이창훈: 또 다른 풍경 - 헤테로토피아, 같지만 다른 풍경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들의 비평행적 진화

: 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가?

아마도 이번 주제는 ‘세계 책의 수도 인천’과 무관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어두운 조명 아래서 전시 소개 글을 읽는데 애를 먹었다. 놓인 인쇄물이 흐릿한 탓이다. 작품을 비추는 조명의 도움으로 어렵게 글을 읽었다. 그건 그렇고 재미있는 전시이다. '책'으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이창훈의 '또 다른 풍경-헤테로토피아'를 즐겁게 봤다.

나는 작업에서 소마미술관의 인공연못 물을 해수(海水)로 바꾸어 채우는 작업을 하였다. 해수는 원래에 있어야 할 곳에서는 생명의 원천이라는 근원적 요소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단지 그곳에서 옮기어져 새로운 이곳 장소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서 작용한다. 생명을 파괴하는 그 자체로서 의미적 성질을 변화시켜 독이 되는 것이다. 즉 그 고유의 물성에는 변화가 없으나 단지 그것이 놓여지는 장소의 변화를 통해 그 물질 자체와 나아가 그 장소성 마저 감추었던 이중적 의미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풍경 - 헤테로토피아〉 설명글

시각 매체인 사진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작업이 아닐까 싶다. 눈으로 보는 것을 믿는 우리에게 그것이 얼마나 불안한 믿음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창훈의 사진은 모두 두 개인데,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계절의 변화뿐이다. 동일한 구도로 각각 다른 시기에 촬영된 듯하다. 결국 사진 내적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사진 너머에 하나의 영상이 출력되는데, 수조 차량이 바다에서 물을 실어 미술관 인공연못에 쏟아 붓는다. 이런 사진 외적인 요소를 통해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헤테로토피아’는 푸코가 언급한 개념으로 전시 이후에나 찾아 읽었다. 여러 소개와 설명이 있지만, 문학과지성사에서 소개한 글이 전시와 맞는 듯해 그대로 옮겨 놓는다. “헤테로토피아는 인간의 욕망과 충동을 상상 속에서 채워주던 유토피아가 현실의 중력에 의해 끌어당겨졌을 때 드러나는 그 균열과 틈새를 직시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바깥’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되며, 여기서 새로운 상상, 현실의 지평이 열린다.”

이창훈. 〈또 다른 풍경 - 헤테로토피아 Another Landscape - Heterotopia〉. c-print(100X57cm each). single channel video(00:07: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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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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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2개 입니다.

      • 저는 사진을 보며 왜 멀쩡한 바닷물을 퍼와서 엉뚱한 곳에 담고 있는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
        바닷물을 의미있게 만드는 세계 지평에서 객체를 분리하고, 그 도구적 성질로써 소금을 얻거나 두부를 응결하게 하는 간수로도 쓸 수 있는데, 그 도구적 진리를 계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 저는 작가가 연못이라 하지 않고 ‘인공’연못이라 한 것에 주목했습니다. 아마도 작가는 자연물을 인공물에 놓으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를 고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닷물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보편적 사실을 토대로 있어야할 곳에 있지 않을 경우 그것은 독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결국 ‘자연인’으로서 우리가 사는 곳은 자연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자연 그대로를 닮아가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추상적, 근본적 물음에 다가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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