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멘토에서 들려주는 기억과 기억행위의 차이
메멘토(Memento, 2000)
현재는 의미 없어 빌어먹을 메모처럼.
기억이란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이죠. 영화 메멘토(Memento, 2000) 주인공 레너드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을 앓고 있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건 이전의 일은 기억하지만 사건 이후는 오로지 10분의 삶만 기억하고 있는 셈입니다. 보통 시간은 흘러간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흘러간 시간은 과거이고 지금은 현재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레너드에게는 시간, 정확히 말하면 과거가 의미가 없습니다. 즉, 사건 이후 그에게는 오직 현재 뿐이죠.
문신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색채 영상과 흑백 영상이 서로 얽히며 진행됩니다. 색채 영상은 현재 사건에서 시작해서 과거 사건을 보여주고, 흑백영상은 그 반대입니다. 쉽게 말해 흑백영상은 순서대로 차례차례 사건이 진행되죠. 우리가 익숙해하는 순차적 시간 방식입니다. 색채 영상은 그것을 거꾸로 보여줍니다. 익숙한 방식이 아니다보니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면서 뒤섞인 방식을 이해하게 되더군요. 영화 끝에서는 이야기를 엮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과연 기억이란 뭘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중간과 끝에 “아파요”라고 말하며 레너드와 그의 아내가 등장하는 비슷한 두 장면이 있죠. 차이가 있다면 첫 번째 장면은 레너드가 아내를 장난스럽게 꼬집는 장면이고 그가 믿고 싶어 한 사실입니다. 다른 장면은 레너드가 아내에게 인슐린 주사를 놓는 장면이고 그가 믿고 싶어 하지 않은 사실이다. 두 장면은 주인공이 과거에 사로잡혀 그의 과거가 자신의 현재를 지배함을 잘 보여준다.
장난치지 마
기억이란 이미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죠. 사실 맞는 말 같습니다. 늘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지난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걸 좀 자세히 풀어보면 ‘기억’보다는 ‘기억 행위’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분명 기억하는 것은 옛날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끄집어내서 현재화하는 것이 중요하죠. 영화 끝(사건 진행으로 따지면 현재)에 레너드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기억이 왜곡되는 것을 두려워한 레너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마 기억을 현재화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메멘토』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아래 버거가 말하는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는 사진에 또 다른 기억장치, 즉 문자가 덧붙여진다.
기억도 일종의 필름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건 너무 진부한 비유다. 필름과 기억을 비교한다고 해서 기억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알게 되는 건 사진이 찍히는 과정이 그만큼 낯설고 전례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억과 달리, 사진은 의미를 보존하지는 않는다. 사진은 그 의미에서 분리된 외양들을 ―우리가 보통 외양에 부여하는 신뢰성과 흡인력은 그대로 지닌 채― 제시한다. 의미는 이해가 작용한 결과다.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5, 66쪽
「사진의 활용」 꼭지는 영화 『메멘토』와 유사한 점이 많다. 아니 그 반대인가?
기억된 무언가에 다가가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억된 것은 선로 끝에 있는 종착지가 아니다. 수많은 접근과 자극들이 그 위에 겹쳐지고, 또 그것으로 이끈다. 인화된 한 장의 사진에 맥락을 만들어 주려면 말이나 비교, 기호들이 필요하다. 즉, 다양한 접근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열려 있어야 한다. 사진을 중심으로 하나의 급진적인 체계가 구축되어,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극적이고,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차원에서 동시에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5,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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