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도덕적인 덕과 지적인 덕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홍석영 옮김, 풀빛, 2005

철학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밑줄을 긋게 되고 질문이나 그것에 대한 나만의 풀이를 적다 보면 한 장을 넘기기가 쉽지않다. 독서의 좋은 습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을 선사한 소중한 내용을 따로 정리하는 방법이 있다.

실제 노트에 정리하는 것이 아날로그적이어서 낭만도 있겠지만 나는 디지털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책에 적힌 글씨는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이렇게 온라인에 남는 흔적은 또 다른 나에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 의미 있는 시간은 오늘도 이어진다. 이번에는 지적인 덕에 관한 내용으로 도덕적인 덕과 다른 의미가 있다.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산물이라면 지적인 덕은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이다.

실천적 사유

사유 자체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며, 오직 목적이 있는 실천적인 사유만이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다. 목적이 있는 실천 적인 사유는 무엇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사유도 지배한다.

위 구절을 읽고 나는 다음과 같이 끼적여 본다. ‘목적이 없는 긍정과 부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는 다소 비약적인 발언으로 정정하면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사유라는 말 자체가 광범위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단지 긍정과 부정으로 한정되어 있다.

무엇인가 결론을 내기 위해 우리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관념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성적 사고를 통해 가장 긍정적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이제 긍정적인 목표를 찾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자신은 왜 그 사유를 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좋은 행위

좋은 행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며, 욕구 또한 이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선택은 사유와 관련된 욕구이며 욕구와 관련된 이성이다.

‘좋은 행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은 참 재미있다. 행위 자체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겠지만, 그 단어에 ‘좋다’가 함께하면 좋은 것을 하고자 하는 그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게 된다. 즉, ‘좋은 행위의 목적은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선택은 사유와 관련된 욕구이며 욕구와 관련된 이성’은 다소 난해한데 다음과 같이 해석해볼까 한다. 옳고 그름에 대한 선택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감정으로 동물적 감정보다는 이성적 감정에 속한다 볼 수 있다.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내용을 종합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실제 책에는 아래 내용이 먼저 있고 앞서 소개된 내용이 뒤를 따랐지만, 이곳에서는 그 순서를 바꿔 설명해 본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문득 도덕적인 덕, 즉 습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과거에는 성장하는 동안 이웃과 소통하고 사람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도덕적인 덕을 알아갈 기회가 많았던 거 같다.

도덕적인 덕이 교육을 통한 지적인 덕과 만나면서 진정한 덕을 형성하는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여 아쉽다. 지금은 도덕적인 덕을 습득하는 기회가 가정에만 국한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어 꽤 오랫동안 끼적거리며 생각을 해본다.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2개 입니다.

      • 도덕적인 덕을 알아도 실제로 실천하는건 쉽지않은 사회죠... 특히나 요즘은 더더욱... 사회가 복잡해지다보니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도덕적이어 보이는 것도 실상 결과적으로는 사회악적인 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거든요. 일례로 봉사활동 하는것도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뺏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죠.

      • 그럴 수 있겠군요.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