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훈 미장센, 흐릿한 또는 또렷한 사람들

뭘 보여주려는 걸까요? 분명, 사진가는 거기 있었을 테니 잘 알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거기 없었으니 잘 모르죠. 사진만으로 상황을 알기는 참 어려운데 이 사진은 또 불친절하군요. 도통 읽을 수 있는 게 없어요. 짤막한 사진 제목만 있는데 그것도 또 불친절해요. 그냥 장소만 알려주고 있어서 말이죠. 몇 년 전 사진입니다. 물론 사진 제목으로 알았죠. 장소는 서울역 광장이나 청계광장 그리고 자유광장(인천 자유공원)입니다. 왜 사람들을 흐릿하게 찍은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광장과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모임 풍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 서울역 광장에 현수막이 하나 보입니다. 그렇다면, 집회 풍경입니다.

미장센 사람들은 시끄럽지만 광장은 말이 없다. 집회나 시위가 열리는 현장에서 광장은 연극 무대로써 결말이 없는 시나리오를 위한 씬을 마친 후에 또 다른 씬을 준비할 것이다. 사람들은 광장을 무대로 다양한 요구를 합창하여 배역을 충실히 수행한다. 역사가 가져오고 인간의 의지가 구성한 연극이 완성된다.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의 움직임은 의미도 없이 그저 장노출 된 필름 안에서 미장센이 된다.

노기훈 개인전 <미장센 Mise en Scène> 전시 서문

노기훈, 미쟝센 #20110610 청계광장, 120 x 150cm, 피그먼트 프린트, 2011

노기훈, 미쟝센 #20120127 서울역 광장, 120 x 150cm, 피그먼트 프린트, 2012

노기훈, 미쟝센 #20131025 자유공원, 73 x 117cm, 피그먼트 프린트, 2013

전시 서문을 읽어보니 집회나 시위라는 말이 있네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앞서 말했던 그 흐릿한 사람들, 그 대답 또는 실마리도 전시 서문에 있더군요. 하나의 사물(?)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의지가 없죠. 사물은 여기 놓이면 여기 있어야 하고, 저기 놓이면 저기 있어야 하잖아요?

여하튼, 전시 서문을 읽고 사진을 봐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더군요. 물론, 전시 서문 가운데 2002년 서울광장에 모인 붉은악마를 광기라고 말하는 얘기도 있었어요. 사람이 모이면 무섭데요.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니 그럴 법도 하죠. 광기라는 의미로 다시 사진을 봤는데 정작 사진에는 광기가 없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거예요. 뭔가 충돌이라도 났으면 이것이구나! 할 텐데 조용하니 뭐 할 말이 없어요. 그래서 영상을 찾아 봤어요. 또 다른 실마리가 될까 싶어서요. 전시에 갔다면 거기서 보았겠지만 가질 않았으니 어쩔 수 없죠. 다행히도 작가가 인터넷에 영상을 올렸더군요.

아쉽게도 공개 영상이 아니였나 봅니다. 어쨌든 말을 이어 갑니다.

처음엔 화면이 왜 일정하지 않나 싶었어요. 왜냐하면 오른쪽에서 영상이 시작되었거든요. 왼쪽은 텅 비어있고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왼쪽 오른쪽, 그러니까 좌우로 영상을 나눠 논 거였어요. 그런지도 모르고 애꿎은 새로고침만 계속 눌렀으니.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은 들떠 있었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이 날은 침체된 내수 경기를 살리고자 전국 고속도로를 무료로 개방했다. 재각과 성국은 나의 오랜 벗이다. 재각은 안동 출신으로, 나와 같은 경기도 안성 소재 대학에 진학한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성국은 나의 고향인 구미에서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불알친구로 일본계 글라스 공장에서 3교대 생산직으로 일한다. 나는 8월 14일 0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구미로 갔다. 성국은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했다. 성국과 하루를 보낸 뒤, 8월 14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늦은 밤 다시 선산톨게이트를 통과하여 서울행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올랐다. 재각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광복절에 무얼 할 것인지 미리 묻지 않았지만, 그가 서울에서 보낸 지난 10여년 동안 그날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우리 셋은 내수진작에 도움이 되질 못했다. 이 영상은 재각과 성국이 보낸 광복절 휴일을 촬영하고 선형 편집으로 나열한 것이다.

노기훈 개인전 <미장센 Mise en Scène> 전시 서문

그렇죠? 선형 편집했다고 하네요. 선형이란 말을 들으면 전 역사가 떠올라요. 역사는 시간 순이잖아요? 과거부터 이렇게 쭉 늘어놓으니까요. 그런데 영상은 선형이지만 시간 순은 아니에요. 왼쪽은 8월 15일 영상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8월 14일 영상이 흘러요. 그렇게 배치됐죠. 평범하진 않죠? 전시 서문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뭔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뒤바뀐 셈이죠. 그러나 꼭 뒤바뀜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뭐라 해야 할까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혹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나든다? 분명, 시간 순으로 따지면 과거와 현재, 그러니까 8월 14일과 8월 15일이지만, 시간 순이 아니라면 달라지죠. 같이 있게 되요. 그렇지 않나요? 전 이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이제 영상을 봤으니 다시 사진에서 궁금했던 점, 왜 사람들을 의지 없는 사물로 보이 게 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을 해요. 의지 없는 사물보다는 무기력한 것이 아닌가. 사진을 이미지로 여기고 보면, 그럴 게 볼 수 있겠다 싶더군요. 선형 편집된 영상은 좌우 배치로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의미가 없죠. 지긋지긋한 좌우. 왜 둘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걸까요? 사실, 충돌해야 할 대상은 좌우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붉은악마를 광기로 보는 사람과 집회나 시위에 참여한 사람, 그리고 좌우 사람들이 서로 충돌할 필요가 없죠. 누가 사람들을 흐릿하게 지웠는지, 지우려 하는지, 반대로 또렷하게 보이게 하려는지 그걸 좀 알아달라고 사진은 말하는 것 같아요.

참고자료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보고 읽고 쓰기/전시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0개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