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키우는 마르셀이 들려주는 사진의 의미

두 친구(존 버거와 장 모르)는 사진 작업을 위해 산악지방에 살고 있는 농부와 생활을 한다. 마르셀은 그들과 함께했던 농부 가운데 한 명이다. 마르셀은 소 50마리를 키운다. 이틀 동안 사진가 모르는 마르셀과 생활하며 꽤 친해진 듯하다. 서로 마음을 열면 진실한 대화가 오고가곤 한다.

모르가 현상한 소 사진을 본 마르셀은 그런 것은 찍을 게 못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찍은 사진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 퉁명스럽게 말을 덧붙인다. 사람 얼굴을 찍을 거면 이렇게 쓱 잘라 찍지 말고 얼굴 전체 그리고 어깨까지 보이도록 찍어야 한다고 훈수를 둔다.

두 사진을 보면, 특히 눈 아래까지 내려온 짙은 눈썹은 묘하게 닮았다. 마치 두 사람이 만나 살다보면 성격뿐 아니라 외모도 닮는 것처럼. 얼굴 전체를 덮은 소털은 손으로 매만지면 얼마나 부드러울까. 반면 마르셀의 얼굴은 고된 노동에 거침 그 자체이다. 그러나 둘은 너무도 닮아 있다는 생각에 마르셀의 얼굴을 손으로 매만지면 그 부드러움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마르셀은 얼굴 사진은 얼굴 전체와 어깨까지 보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그도 그것이 뭔가 다른 의미였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소 사진은 찍을 게 못된다고 하면서도 그 소가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소 이름을 말한다. 50마리 소 가운데 눈언저리만 찍은 사진을 보면서 말이다. 마르셀을 아는 누군가는, 그러니까 산악지방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콩브레 마을 사람처럼 눈언저리만 찍은 사진을 봐도 그게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마을 사람에게 사진을 보일 필요조차 없겠지만.


며칠 후, 뒷이야기를 마저 읽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지금 생각이 사뭇 다르다. 내가 촬영자 입장에서 마르셀을 소 50마리를 키우는 고집스럽고 억척스런 노인으로 봤다면, 이제 마르셀을 정이 많은 한 노인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그가 했던 몇 마디 말 때문이다.

“좋군! 여기는 다 나와 있어.” 마르셀은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골랐다. 그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의 커다란 소, 그의 손자, 그의 개.

그는 스스로 이 사진을 골라 놓고 안도하며 말했다. “이제 내 증손자들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겠군.”

마르셀이 고른 사진은 앞서 말했던 얼굴이 모두 나오고 어깨가 보이는 초상사진이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라고 한 이유는 고상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같이 살고 있는 손자는 물론, 그 아이가 낳을 미래의 자식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소똥이 묻어 있는 장화는 사진 밖에 가려져있다.

모든 것이 나왔다고 말한 사진 속에는 손자와 강아지 그리고 마르셀이 있다. 그런데 자신을 알리기 위해 사진기를 노려 본 마르셀은 사진 속에서 혼자이다. 아마도 그는 뭔가 바라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자식이나 손자에게 손을 내밀기 보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었나 보다. ‘모든 것’은 손자와 강아지가 나온 사진이고 ‘나’는 혼자 나온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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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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