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플라톤의 동굴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이재원 옮김, 이후, 2005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로 시작해서 다시 동굴을 찾는 것으로 끝이 나는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는 읽는 내내 나에게 태양의 빛을 비춰주었다. 풍부한 사진의 역사와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사진 작가, 비평가의 등장은 사진의 본질에 대해 궁금해하던 나에게 강렬한 다 갈래의 빛이었다.

『사진에 관하여』의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다 생각되는 글이 없어 수전 손택이 언급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었다. 256에 달하는 페이지 중 나의 흔적, 즉 밑줄이 그어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흥분되고 또 감미로우며 때로는 충격적인 언급에 내내 고뇌했다. 잠시 책 표지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전 손택을 바라본다.

자, 정신을 차리고 다시 플라톤의 동굴로 돌아가보자. 진리의 실재를 볼 수 없는 포로들에게 플래시가 터지는 카메라가 쥐여진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그 궁금증으로 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플라톤은 거짓 실재, 즉 이미지를 보고 있는 불쌍한 포로에게 태양이 비추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경험한다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으로 자꾸 축소하려 한다. 결국 오늘날에는 경험한다는 것이 그 경험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것과 똑같아져 버렸고, 공개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그 행사를 사진으로 본다는 것과 점점 더 비슷해져 버렸다.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이재원 옮김, 이후, 2005, 48쪽

또 다른 플라톤 동굴 이야기

카메라를 손에 쥔 포로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리라. 그 정체가 궁금하여 이리저리 살펴보는 사이, 플라톤의 동굴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포로가 속박에서 풀려나 태양이 비추는 믿을 수 없는 동굴 밖의 현실을 보고 다시 동굴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리려는 찰나, 그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진리의 실재를 보고 그 사실을 알리려 허겁지겁 달려온 영웅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가 그 동안 보고 있던 것은 단지 그림자일 뿐이고 저 동굴 밖에 실재가 존재하고 있다고 목 놓아 외쳐도 사진 놀이에 빠진 동료 포로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이미 사진 놀이는 전염되어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결국 실망한 영웅은 홀로 동굴 밖을 뛰쳐나간다.

그렇게 동굴 밖 진실이 잊혀져 갈 무렵, 사진 놀이가 신기해 그림자를 촬영해도 기쁘기 짝이 없었던 포로들은 점점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솟구치며 그제야 영웅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우르르 어두컴컴한 동굴을 빠져 나온 포로들은 처음 보는 강렬한 태양 빛에 당황하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이미 카메라 플래시에 익숙한 그들이 아닌가?

눈을 뜬 포로들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끝 없이 펼쳐진 동굴 밖 광경에 놀랐다기 보다 수 많은 대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두 새로운 대상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촬영 삼매경에 빠진다. 처음에는 무리 지어 다니며 새로운 대상에 대해 서로 신기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리는 줄고 몇몇 포로들이 곳곳에 출몰한다.

세월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시간이 다시 지났다. 수 많은 대상에 익숙해지고 처음에는 관심도 없던 끝 없이 펼쳐진 광경에도 눈길을 보냈지만 동굴 속 그림자를 그리워하는 포로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시 동굴 속으로 돌아가는 포로들과 동굴 밖에 남아 있는 포로들은 저마다 관심 있는 대상 촬영에 바쁠 뿐이다. 지금까지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영웅은 조용히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촬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를 읽고 느꼈던 것을 또 다른 이야기로 표현해 보았다. 사실, 수전 손택은 초현실주의모더니즘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진의 생태학을 언급했다. 이런 내용은 책 전반에 걸쳐 언급되고 있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사진에 관하여 궁금하고 역사, 비평 혹은 영향과 본질에 대해 궁금하다면 먼 길을 돌아가지 않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으리라. 물론, 곳곳에서 등장하는 사건이나 사물의 이야기는 약간의 추가 지식을 얻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하고 싶다.

카메라는 일종의 약이자 병이며, 현실을 전유하고 쓸모 없게 만들어 버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 사실상 사진의 힘은 이미지와 사물, 복제물과 원본과의 차이에 따라서 우리의 체험을 반영하기 위해서 현실을 점점 더 근사하지 않게 만드는 힘, 즉 플라톤의 철학을 소멸시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책, 255-256쪽

동굴의 비유 (allegory of the cave): 플라톤이 사용한 비유. 그는 학자가 보는 이데아계(界)를 태양의 빛에 비치고 있는 세계에 비유하여, 육체에 묶여 있는 보통 사람의 영혼이 보는 세계는 빛에 등을 돌리고 동굴에 묶여 있는 포로들이 보는 세계와 같다고 하였다. 포로들은 진리의 실재(實在)를 볼 수 없고 단지 그 그림자를 보는 것에 불과하고 또한 이것을 진리라고 오판하고 있는 것이어서 사람들을 이러한 상황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바로 철학자의 임무라고 하였다.

"동굴의 비유". 노동자의 책.


초현실주의 (超現實主義): 제일 차 세계 대전 뒤에, 다다이즘의 격렬한 파괴 운동을 수정하여 발전시킨 예술 운동. 인간을 이성의 굴레에서 해방하고, 파괴와 창조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최고점'을 얻으려고 하였다. 문학의 경우에 이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비합리적인 것이나 의식 속에 숨어 있는 비현실의 세계를 자동기술법과 같은 수법으로 표현하였다. ≒쉬르레알리슴ㆍ초사실주의.

"초현실주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모더니즘 (modernism): 사상, 형식, 문체 따위가 전통적인 기반에서 급진적으로 벗어나려는 창작 태도. 20세기 서구 문학ㆍ예술상의 한 경향으로, 흔히 현대 문명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미래에 대해서는 반유토피아적이다. 또한 현실 비판의한 방법으로 예술의 비인간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근대주의.

"모더니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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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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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3개 입니다.

      • 이 책을 읽고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수전 손택의 또 다른 저서인 『타인의 고통』을 읽게 됩니다.

      • 비밀댓글입니다

      • 넵, 수전 손택이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언급을 했죠. 저는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다른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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