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사진을 꺼리는 이유

내 모습이 주제를 넘어서고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왜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존 버거가 쓴 글을 읽고 더 단단해졌다.

선명한 사진을 좋아하고 즐겼던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본 그대로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건 내 기술이 부족한 탓일 수 있고, 평소에 쌓아놓은 교양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알고 지내는 한 사진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늘 푸념 섞인 말을 한다. 물론, 이 말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사진에 옮겨 놓는다는 말은 아니다. 뭔가를 본다는 것은 뭔가를 의식한다는 것이다. 결국,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함께 있을지라도, 그때 본 것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옮겨 놓고 싶은 바람이다. 물론,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불평이다.

이런 불평은 사진에 고스란히 영향을 준다. 그때 본 것과 느낀 것을 사진에 나타내기 위해 바깥에서 호소하는 방법을 찾는다. 한 예가 바로 선명함이다. 사진은 시각 매체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선명하면 눈에 잘 띈다. 뿐만 아니라, 풍경에서 여러 대상을 제거하고 한 대상만을 선명하게하면 어쩔 수 없이 그 대상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 시간이 짧은 시대에 적절한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어딘가 급히 가는 구경꾼을 잠시라도 멈추게 하는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바깥에서 사진을 보는 구경꾼은 결코 안을 살피지 못한다. 아무리 사진 찍는 자의 의도가 좋을지언정, 안을 들여다볼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구경꾼이 선명함에 유혹되어 그 감칠맛만 맛보고 가던 길을 가도, 사진 찍는 자가 만족하면 모를까.

사진은 모호한 메시지다. 롤랑 바르트는 이것을 약호 없는 메시지라도 했다. 버거는 사진의 이런 모호성을 인정하면 독특한 표현수단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런 모호성은 새로운 이야기 방법을 창출할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 내가 제기하고 나중에 되돌아가려는 질문이다.”* 사진은 모호하고, 그것은 사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라면, 바깥에서 호소하는 방법, 그러니까 사진을 선명하게 하는 방법은 메시지를 드러내기보다는 더욱더 감추는 효과다.

요즘은 좀 흐릿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사진이 좋다. 흐릿하다고 해서 조리개를 최대 개방하고 가까운 대상만 남긴 사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을 살짝 늘렸을 때 느낌, 이미지를 살짝 잡아 당겼을 때 느낌과 같다. 그럼에도 대상은 선명하게 보이는데 그것은 디테일 때문이다. 손전화로 책에 실린 사진을 찍어도 곧잘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책에 실린 사진이 갖고 있는 디테일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디테일은 대상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말하기의 다른 방법』, 이희재 옮김, 눈빛출판사, 2004,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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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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