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사진을 찍지 못하는 이유

전몽각, 『윤미네 집』, 포토넷, 2010

요즘, 어떤 이유를 적는 일이 부쩍 늘었다. 물론, 사진에 관한 것이다. ‘아’이유 시리즈가 될 판이다. 내가 사진에 관해 생각하는 이런저런 이유랄까?

아이 사진은 찍지 못하는 이유, 제목이 참 엄청나다. 뭔가 대단한 생각보다, 내게 왜 아이 사진을 찍지 못하는지 궁금해 글로 풀어 볼 요량에 적고 있다. 우연찮게(?) 카메라가 생기고 자연스레(?) 아이 사진을 찍는 것, 아마도 많은 이가 공감할 아빠 사진가 앞에 놓인 정해진 차례일 것이다. 물론, 아이 핑계로 카메라를 챙기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결과로써는 아이 사진을 찍는 것은 변함이 없다.

몇 년 그렇게 아이 사진을 찍었고, 앨범을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을 드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무렵에 아이 사진 찍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 아빠 사진가로 임무를 다했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이는 크고,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한다. 몰래 찍으려 하면 무척 화를 낸다. 이런 이유라면, 아이 사진 찍는 것을 그만 둔 이유로 충분한 것 같다. 그런데 뭔가 개운하지 못하다. 그 찜찜함은 무엇일까?

세 사진의 공통점은 대상이 아이라는 것과 (여기 사진에 표시되지 않았지만) 행복이라는 낱말이다. 자는 아이,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 그리고 우는 아이. 저마다 모습은 달라도 행복한 인상을 준다. 아마도 사진을 찍은 사람은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의 표정이나 몸짓을 보고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 이런 이유이다. 내가 그랬다. 이런 이유에서 난 이제 아이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느낌은 사진 찍은 자만 느끼는 행복이지, 사진 찍히는 자가 느끼는 행복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간 찍은 아이 사진은 스스로 찍은 초상화다. 나는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아빠로 아이를 찍은 전몽각의 『윤미네 집』(포토넷, 2010)을 보면 그 생각은 더 단단해진다. 개정판은 1990년 초판본에 아내 사진과 글이 덧붙었다. 정말로 맺음을 지은 사진집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내가 그동안 찍은 사진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넝쿨나무 잎 뒤로 엄마, 아이 그리고 아이 둘이 보인다. 어린 두 녀석은 아빠를 보고 있지 않고, 엄마와 큰 아이는 나란히 아빠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두 녀석도 조금 크면 두 사람과 같이 아빠를 볼지 모른다. 그렇게 서로 바라보고 시선을 맞추며 사랑을 확인할지 모른다. 또 다른 사진에도 이런 시선이 넘쳐난다. 엄마 귀에 귓속말을 하고 있는 아이들, 웃는 아이 뒤에 행복한 웃음으로 사진을 찍는 아빠, 큰 아이 머리를 매만지는 부지런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엄마의 손길.

더불어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가 사진을 찍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구나! 여러 깨달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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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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