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사진의 털, 룩(Rook) 앤 룩(Look)

노순택, 《사진의 털》, 씨네21북스, 2013

'사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할 때쯤, 만나게 된 책이 사진작가 노순택의 <사진의 털>이다.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면서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감에 따라 내 마음은 요동치고 두렵기까지 했다.

빨리 이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저 책장을 덮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원하고 또 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진은 잔잔하다. 수 없이 이뤄진 자기 검열의 흔적이 엿보인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감출 수 있는가? 아니, 어떻게 하면 이렇게 적나라할 수 있는가?

"사진은 가위질이다. 이어진 시간을 찰칵, 펼쳐진 공간을 싹둑 잘라낸다. 시간과 공간을 프레임 안에 가둔다. / (중략) / 나는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찍었지만, 가리기 위해 노력했음을 자백한다. 가리는 노력은 시간과 공간 모두에 적용됐다. 바느질이 쉬울 리 없다. 사진은 보여주기 위해 제작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응시하는 많은 사진들은 가리기 위해 제작된다."〔86〕

흘깃 훑어 본 한 장의 사진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습격한다. 무방비 상태로 맞이한 그 불청객에 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느낀다. "나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야 이 책을 보든 말든 할 게 아닌가?" 내 교양의 방어 시스템이 스멀스멀 나를 감싸기 시작한다. 눈을 감는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눈을 뜬다. 이제 내 눈은 그리 호락호락한 과거의 그 눈이 아니다. 탄탄한 방어막으로 끝까지 살아남을 완벽한 룩(Rook)이다. 기회가 오면 체크메이트를 외칠 요량으로 다시금 책장을 펼친다. 적의 공격이 온다. 막는다. 다시 오는 공격과 그것을 막는 방어의 운동이 반복된다.

호흡이 거칠다. 반의반을 왔을 뿐인데 적의 공격이 너무 거칠다. 사실, 그의 사진은 잔잔하다. 시위 현장에서의 그의 기록물은 자극적이지 않다. 만약 사진 에세이 형식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모르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봤을지 모른다. 나에게 사진의 읽기는 아직 어렵다.

"사진이 '사실'을 말할 거라는 기대는 발명 이래 계속돼온 착각이다. 위 사진 속의 남자는 죽었다. 위 사진 속의 남자는 자고 있다. 뭐가 사실일까? 사진은 사실을 다룰 뿐, 사실을 말하는 건 아니다."〔120〕

고백하자면 이미 나의 물러섬이 존재했다. 중무장한 전차를 타고 갑옷을 입고 있는 룩도 사실은 두려움에 떨며 다가감과 함께 물러섬이 있지 않았을까? 언제라도 터질 것 같은 그 폭발의 위험, 시위 현장 속에 숨어 있는 그것은 나를 두렵게 했다. 이미 알기에 알고 있었기에 나는 더욱 더 룩이 되고자 했다.

"사진은, 거리에 대한 감각과 사유를 필요로 한다. 물러섬과 다가감, 그것을 물리적 거리에 국한하지는 말자. 나에게 타자는, 심리적 거리감을 재고 따질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206〕

연재 시점에서 사진의 역사 공부에 빠졌다는 노순택은 그런 사진사 중 흥미로운 얘기와 함께 오늘날의 사진적 풍경을 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말했듯이 <사진의 털>은 '이명박 시대의 단편선'이 되고 말았다. 그의 갈등의 결과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으리라.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사진 에세이에 소개된 그가 말하는 '사진적 풍경' 중 내가 교양적 사진이라 생각하는 것은 손에 꼽힌다. 열 손가락 모두가 필요하지 않다. 단지 다섯 손가락만으로 셀 수 있다. 아니 그것마저도 과분하다. 아마도 그 작은 흔적이 그의 커다란 갈등의 흔적이었으리라.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괴리.

"사진의 본성으로 흔히 꼽는 기록성과 사실성은 역설적으로 사진의 거짓을 용이하게 한다. 사진을 들이대면 사람들이 믿을거라는, 그리하여 속을 거라는 믿음과 관행과 착각이 사진을 매개로 한 호소와 거짓말을 끊임없이 생산해왔다."〔210〕

내 앞에 풍경이 펼쳐진다.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아니, 간직하고 소유하고 싶다. 내 앞에는 그것이 있었고 그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것의 미적 여부는 촬영 여부와 관련이 없다. 아름답건 그렇지 않건 난 그 순간을 목격했고 내 기억을 정지시키고 싶었다. 지금 이 광경을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흥분과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아름답다 생각했다. 아니 충격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흥분과 불안감의 결과물은 그다지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왜 이런 괴리가 생기지? 내가 봤던 건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카메라가 이상한가? 렌즈를 바꿔볼까?' 나는 거기 있었고 그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다르다. 도통 알 수가 없다.

지난 날을 회상할 필요 조차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 온 몸에 철갑을 두르고 무거운 몸뚱아리를 가까스로 지탱하며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는 나의 모습을 보라.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낯설다고 회피하는 나의 모습을 보라.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던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이렇게 모르는 것일 수 있는지를 '보이지 않던 길'은 보여주었다. 허벅지가 후들거릴 때까지 산 속을 헤매다 결국 내려왔다. 그곳은 헤맬 만한 곳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헤맸다. 해가 기울었다."〔272〕

사진은 어렵다. 노순택의 말처럼 직접 바느질을 해야 한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그 누군가가 촬영한 사진을 읽어야 한다.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혹은 나와 관련이 있는 타자의 것을 말이다. 이런 이유가 나로부터 사진집을 멀리하게 한다.

필터 하나 가격도 되지 않는 사진집을 사지 않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것이 나의 변명의 궤이다. 또한 이런 이유로 노순택, 사진 에세이 <사진의 털>의 출간 결심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노순택이 아빠 사진사 전몽각을 만나 다른 용기를 냈듯 또 다른 의미로 나는 사진작가 노순택을 만나 다른 시선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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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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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댓글입니다

      • 어이쿠, 장문의 댓글입니다. 다른 분도 이런 글을 읽으면 좋을텐데
        비밀댓글이라 아쉽습니다. ^^

        저는 카메라를 구입하고 1년 정도 지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이 생기니 궁금한 점이 참 많더군요.

        남들 다 붙잡는다는 카메라 기술책도 보긴 했지만, 뭔가 아쉽더군요.
        기술을 안다고 내가 봤다고 믿는 그런 풍경이 사진에는 없었으니까요.

        제가 궁금증이 생기면 좀 심화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흔히 말하는 고전 읽기입니다. 동양 고전과 서양 고전을 읽기 시
        작 했죠.

        이해되는 내용도 있고 모르는 내용도 많았지만, 읽다보니 어떤 연결고
        리가 생기더군요. 지금도 그걸 쫓아가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많이지만, 이제는 사진 관련 책도 읽어봐야겠다 싶어 롤랑
        바르트, 수전 손택을 읽게 되었죠. 운이 좋았습니다. 이리저리 찾다가
        좋은 책을 만났으니까 말이죠.

        롤랑 바르트의 온실사진 때문에 장폴 사르트르의 <상상계>도 읽기 시
        작했습니다. 상상한다는 것에 묘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요. ^^

        책을 읽지 않다는 말씀은 관심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이유가
        있을 듯 합니다. 현대인은 '결론', '결과'를 참 쉽게 얻을 수 있죠. 예전
        에 블로그 기사를 작성하고 물음표를 던졌는데 오히려 그것이 무엇인
        지 질문이 돌아오더군요.

        허무했습니다. ^^

      • 비밀댓글입니다

      • 토요일, 아침 댓글이 달려서 짐작은 했습니다. 당직이셨군요. ^^

        말씀처럼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제 머리 속에 인문학이라는 개념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가슴 속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

      • 요새 사진에 있어서 소위말하는 슬럼프? 권태기? 정도쯤 되는거 같은데..
        다 내려놓고 관련책들을 한번 읽어볼까 하고 있습니다^^;;

      • 방향을 잃거나 흥미 또는 의미를 상실하면서 슬럼프에 빠지는 듯합니다. 제가 줄곧 책을 놓지 않는 이유가 이런 이유인데 역시 자신이 문제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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