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닷 2월호, MULTI-CHANNEL, 안정 또는 불안을 느끼는 사진

포토닷 2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사실, 이것은 어제부터 시작되었고 지금, 다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책이나 잡지를 볼 때 목차를 상세히 살피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목차를 통해 책 흐름을 알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어 꼼꼼히 본다고 하는데 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몇 개 낱말이 열거된 것으로 책을 알 수 있지? 그것은 논문이나 학술자료에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한다. 오랜 시간동안 일정한 의미의 흐름 속에서 그것을 반박하거나 다른 정의를 내릴 때 목차가 의미의 흐름을 대신할 수 있겠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은 읽어봐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상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몇 문장만 읽어도 느낌으로 내게 맞는 책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직감이 실패한 적도 몇 번 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정직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느낀 것이 변했을 뿐이다.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 다시 보니 MULTI CHANNEL이라는 큰 글자가 눈에 띈다. 아마도 몇몇 사진가의 작품 한 점을 같은 지면에 소개하는 코너 같다. 작품 한 점씩이라고 하지만 책 반절을 꽉 차지한다. 실제 그렇게 큰 사진은 아닐지라도 책 틀 안에서는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두 장의 사진이 있다. 음, 이 말은 틀린 말이다. 모든 사진이 별나 보인다. 여기서 눈에 띈다는 말은 내게 뭔가를 떠올리거나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는 의미이다. 두 장의 사진은 순서대로 코지 이노우에와 한영수 사진이다.

음, 롤랑 바르트는 바르트라고 짧게 얘기해도 어색함이 없는데, 한영수를 영수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좀 답답하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국내, 국외 작가 이름을 같은 지면에 적을 때 형평성 문제가 생겨 참 난감하다. 그래서 이럴 경우 전체 이름을 적을 수밖에 없다. 물론 국외 작가만 해당된다. 국외에서 기사를 쓸 땐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좀 찾아보니, 성으로 대체하고 있다. 어쨌든, 어떤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늘 의도가 궁금한데, 코지 이노우에와 한영수의 사진은 비슷한 풍경이다. 흑백 사진 때문인지 아니면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옷차림 때문인지 비슷한 시기에 다른 곳에서 찍은 듯 보인다. 정확히 알 순 없다. 아, 작가 소개를 보니 두 작가의 활동 시기가 겹친다. 코지 이노우에는 1940~50년대 후쿠오카를 기록했고 한영수는 1950~60년대 서울을 기록했다. 물론, 사진만으로는 저곳이 후쿠오카고 이곳이 서울인지는 알 수 없다.

코지 이노우에 사진을 먼저 봤다. 이건 어제 느낌인데 지금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흑백 사진이고 회색 하늘이 사진의 2/3 이상을 차지한다. 아이들이 몇 명 있다. 서 있거나 앉아 있다. 무리 지어 있지는 않다. 아이들 포즈는 제각각이다. 그 모습을 통해 다른 삶을 보는 듯하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이지만 제각각인 모습에 마치 개별 삶을 보는 듯 착각이 든다. 아직 아이들인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알 수 없다. 언니로 보이는 한 아이가 동생을 어부바하고 있다. 무리 중에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아이는 패션모델처럼 왼쪽 손을 허리춤에 놓고 사진가를 바라보고 있다. 똑바로 서있지 않고 양 다리는 비스듬하지만 균형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 인상 깊다. 그 옆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아이 가운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유일한 아이다. 왼쪽 손바닥으로 오른쪽 손 팔꿈치를 살짝 잡고 있으며 목에 걸치는 앞치마를 입고 있다. 앞치마라니, 분명 풍경은 한가로운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사물이다. 그 주위로 까까머리 아이 셋이 있고 맨 뒤로 형제처럼 보이는 두 아이가 되돌아 서 있다. 역시 둘 모두 까까머리다.

난 이 사진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또 이상하게 들릴 얘기지만, 잠이 오지 않고 어둠 탓에 불안할 때 가슴에 무거운 것, 가령 쿠션을 올려놓으면 비로소 안도하고 잠이 들곤 한다. 아마도 이것은 갓난아이가 불안해하며 울 때 가슴을 토닥이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게 사진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하늘은 안도감을 준다. 만약, 사람이 좀 더 작았다면 불안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마치 어릴 적 이불을 덮어씌우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단단히 누르는 위험한 놀이 때 느낀 그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영수 사진은 비슷한 풍경이지만 느낌은 다르다. 코지 이노우에 사진처럼 안정감을 주는 구성과는 거리감이 있다. 두 사진 모두 하늘이 사진 대부분을 차지하고 땅 가까이 아이들이 있지만, 한영수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좀 더 크다. 무엇보다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가로지르는 전선 탓에 긴장감이 흐른다. 코지 이노우에 사진에 등장하는 동생을 업은 언니가 이 사진에도 등장한다. 다만, 까까머리 형이다. 사실, 형인지는 알 수 없다. 등에 있는 아이가 까까머리이니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등에 있는 아이는 바지를 입지 않고 있다. 또 앞 사진과 비슷한 포즈가 있다. 햇살 때문인지 모르지만,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뽀얀 피부에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있는 아이가 사진 왼쪽을 가로질러 무언가를 보고 있다. 앞선 사진에 등장했던 패션모델 아이와 달리 당당함과는 거리가 멀다. 양 팔은 앞으로 내리고 있고 왼손으로 오른손 엄지를 잡고 있는 듯 보이는데 겸손이라는 낱말이 떠오른다. 물론, 아이에게 겸손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전선을 본다.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전선, 그 끝에는 한 아주머니가 있다. 허리춤에 포대기로 보이는 것이 보이는데 확실하진 않다. 어쨌거나, 앞 사진과 다르게 어른이 등장한다.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전선과 그 끝에 놓인 아주머니 혹은 어머니 때문에 코지 이노우에 사진에서 느낀 안정감보다 불안감이 증폭된다. 아마도 이것은 시대적 상황이 알게 모르게 내 이해 속으로 들어온 탓인지 모른다. 내가 겪지 못했지만, 부모님을 통해 전해들은 그 얘기들.

두 사진은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또한 확연히 다르다. 왜 첫 사진에서는 안정감을 느끼고 두 번째 사진에서는 불안감을 느꼈는지 어느 정도 해명을 했지만, 이것이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인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시대적 상황 탓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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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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