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존재했음’이라 확인했다면, 존 버거는 좀 더 사진의 모호성을 파고들었다. 버거는 사진의 모호성은 “작품 ‘이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이 말만큼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다. 모호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하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따로따로인 것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로 모은 것은 따로따로인 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인지, 진실인지에 따라 투명성을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각각 사진이 모호하면 하나로 모은 것도 결국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닌가!

늘 여기서 오락가락하는 나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고 때문이라 진단하지만 진단만 있을 뿐 해결책이 없다. 이런 것은 어떨까? 한 방송 프로에서 장인에게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는 일화가 좋겠다. 어떤 분야의 장인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만두를 빚는 요리사인 것으로 기억한다. 진행자가 알맞은 반죽의 강도를 물었는데 장인은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방송을 봤다면 알게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의미는 내가 오랫동안 경험한 집약체이다. 서양 레시피는 정확한 수량과 조리 시간이 핵심이지만, 조리 때 발생하는 다양한 방해 요인까지 감안된 것은 아니다. 결국, 마지막에 결정하는 것은 장인의 말처럼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객관적인 과학이 된다.


버거와 그의 친구 장 모르가 늘어놓은 사진을 본다. 사진은 장 모르가 찍었다. 글은 같이 썼다고 하는데 어떤 게 버거 글이고 어떤 게 모르 글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우리는 신비롭게 꾸미고 싶지 않다’*로 글은 시작한다. 모호한 것과 신비로움은 분명 다르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늙은 여인이 주인공이다. 물론, 가공의 인물이다. 이야기는 허구라는 점을 명심하자. 늙은 그녀는 인생 전반을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다양하다. ‘태어나는 것, 어린 시절, 일하기, 사랑, 이주, 일, 여자라는 것, 죽음, 마을, 일, 즐거움, 외로움, 남자와 여자, 일, 알프스 산맥’* 이런 다양함이 사진을 통해 드러난다. 버거와 모르가 보여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그녀 삶을 기록한 사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이다.

꽤 많은 사진이 나열되어 있다. 같은 사진을 일부 확대하거나 크기를 달리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제 내가 들은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본다. 이것은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스투디움과 관련이 있다.

확연하게 비교된 두 사진이 있다. 왼쪽에는 익숙한 사물이 보인다. 약간은 녹슨, 아니 꽤 부식된 철관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 모순이지만 정확한 현상이다. 오른쪽에는 가운을 걸친 한 여인이 긴 머리를 풀고 있다. 그녀 앞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고 물이 가득 채워있다. 막 목욕을 할 참이다. 두 풍경은 시골과 도시를 가로지른다. 산악 지방에서는 물이 귀할 것이다. 물은 소를 키우고 치즈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도시에서 물은 시골과는 다르게 소비된다. 같은 물이지만, 가치가 다르다.

또 다른 사진 한 장. 왼쪽에는 나이테가 선명한 나무가 있다. 나무 옆으로 판자가 보인다. 판자는 나뭇결을 따라 평면으로 붙어 있다. 그 사이로 살짝 틈이 보인다. 나무 아래에는 커다란 돌이 땅과 대치를 이룬다. 아마도 어떤 창고 혹은 집을 지탱하고 있는 하부 구조가 아닌가 싶다. 돌 앞에는 들꽃이 여럿 있다. 모습이 들쑥날쑥하다. 이제 오른쪽 사진이다. 그림인데 여럿이다. 흔히 식물도감에서 볼 수 있는 옛 그림이다. 요즘은 대부분 사진을 쓴다. 왠지 반갑다. 식물 줄기에 붙은 잎을 상세히 그렸다. 식물은 입모양으로 각각을 구별할 수 있다. 각 그림 아래엔 식물 이름이 있다. 이것도 먼저 살펴본 것과 같이 시골과 도시 풍경을 맞대고 있다. 하나는 분류하고 체계화된 지식이고 하나는 살아 있는 경험이다. 아!

그렇구나. 이것이구나! 내가 앞서 한 말은 취소해야겠다. 이것은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스투디움이라는 말을 다시 써야겠다. 이것은 버거 식으로 말하면 응집성이다.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이다.


*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말하기의 다른 방법』, 이희재 옮김, 눈빛출판사, 2004, 125쪽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사진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0개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