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세상은 아름답다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세상은 아름답다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최성만 옮김, 길, 2007

발터 벤야민의 짧은 에세이(40페이지 정도), 『사진의 작은 역사』를 읽고 나니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과 매우 흡사한 동질성을 느낄 수 있었다. 결론의 유사성은 매우 흥미로웠다. 바르트는 그의 에세이에서 장폴 사르트르의 『상상하는것』을 언급했지만, 벤야민의 이 책을 같이 언급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벤야민은 창조적 사진을 언급하며 반대 개념으로 구성적 사진을 제시했다. 바르트는 창조적 사진의 유사 개념으로 문명화된 코드를 언급했으며 구성적 사진에 대해서는 현실의 깨어남과의 투쟁을 제시했다. 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맞대어 비교해보면 비유는 다를지라도 서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으로 유추된다.

유물론적 창조와 기호론적 코드

"사진이 잔더, 제르멘 크룰, 블로스펠트와 같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연관관계에서 떨어져 나오고 관상학적 · 정치적 · 과학적 관심에서 해방된다면, 사진은 '창조적'이 된다. 렌즈가 하는 역활은 '개관하기'가 된다. 싸구려 사진 저널리스트들이 등장한다. (중략) 그 물신의 특성들은 유행의 조명이 교체되는 데서만 생명을 부지한다. 사진촬영에서 창조적인 것이란 그 사진촬영을 유행에 내맡기는 일이다."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최성만 옮김, 길, 2007, 191~192쪽

사진의 사실주의가 미학적, 경험적 습관(미용실이나 치과에서 잡지들을 뒤적이는 것)을 통해 완화되고 상대적으로 남아 있다면 현명하다.

롤랑 바르트, 『밝은 방』,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146쪽

벤야민과 바르트가 말한 내용을 서로 비교하며 유사점을 찾다 보니, 수전 손택이 『사진에 대하여』에서 언급한 「플라톤의 동굴」이 떠오른다. 이성을 통하여 보는 이데아(idea)의 세계가 참된 세계라고 하면, 감각을 통하여 관찰한 일반 속인(俗人)의 세계는 동굴 속과 같이 어두운 세계라는 플라톤의 '동굴의비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작가는 모두 현실 세계, 즉 어두운 세계를 비틀어 말하고 있다. 벤야민은 사진에서 사회 인식적 연관관계가 제외된다면 진정한 발전을 모색할 수 없음을 말한다. 바르트는 그런 현상을 미용실이나 치과에서 잡지들을 뒤적이는 것으로 묘사했다. 결국, '생명을 부지하다.', '남아 있다면 현명하다.'라는 의미는 이데아 세계와 멀어지는 사진을 비틀어 말한 것이다.

폭로를 위한 구성과 탈신화를 위한 현실의 깨어남

사진술적 창조성의 진짜 얼굴이 광고나 연상효과이기 때문에 그것의 정당한 적수는 폭로이거나 구성이다. (중략) 공장처럼 인간관계들이 물화된 형태는 인간관계들을 더 이상 내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뭔가를 구성하는 일', 뭔가 '인위적인 것', '인공적인 것'을 구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진의 작은 역사』, 192~193쪽

이 사실주의가 사랑의 두려운 의식에 시간이라는 글자를 되돌아오게 하면서 절대적이고, 말하자면 본원적이 된다면 미친 것이다.

『밝은 방』, 146쪽

현실은 점점 물화가 가속된다. 마치 "공장에서는 더이상 인간관계들을 볼 수 없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진의 창조성을 폭로할 수 있는 것은 사진적 구성, 즉 인위적 구성이다. 더불어 벤야민은 사진의 표제가 이미지의 상투적인 전달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바르트가 언급했던 잡지를 뒤적이는 행위는 바르트 신화론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물질문명이 어떤 반성과 거부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개념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탈신화가 필요하다. 은폐되었던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으로 복원되고 드러날 때 탈신화가 일어날 수 있다. 사실로 인식했던 것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순간이다.

세상은 아름답다

이 책을 통해 벤야민이 희망했던 것은 이후 작성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도 말했던 매체의 정치성이다. 벤야민이 "세상은 아름답다"라는 표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은 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신문과 같은 매체가 사진을 이용한다면 모든 삶을 문자화 한다는 점에서 확실한 표제가 사용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벤야민이 희망했던 사진적 표제는 매체를 통해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다. 더불어 사진이라는 이미지조차 매체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표제를 다는 일은 사진촬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그의 사유는 증명되었다. 다만, 증명되었다는 것이 슬픈 것이다.

더 읽을거리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보고 읽고 쓰기/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2개 입니다.

      • 비밀댓글입니다

      • 어이쿠, 명료하게 잘 정리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다음 책은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을 골라봤습니다. 아마도 책 제목으로 유추하면 사진은 없고 글로써 사진을 찍었다고 해야할 거 같습니다. 머리 아픈 책 다음에는 좀 감성적인 책이 좋더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