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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2호: 한가로움의 은밀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2호: 한가로움의 은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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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펼쳐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그동안 좋지 않은 일을 연달아 겪어 여유가 없었던 탓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 6월호는 포장비닐을 뜯지도 않은 채 간직하고 있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살아가는 의미보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힘들다보니 원론적 질문은 다 부질없어 보였다. 수많은 학자들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삶, 그 자체를 말하려 했던 것일까? 첫 지면에 소개된 “런던 예술거리의 은밀함”(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2호)에서 아트딜러인 새디 콜스는 꽤 여유로워 보인다. 그가 하는 일은 예술가와 수집가 사이의 가교 역할이다. 그가 말하는 예술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어떤 것”이다. 과연 그럴까? 힘든 시기를 계속 겪다보니 그의 말처럼 예술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불과 몇 달 전에 ..

오랜만에 펼쳐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그동안 좋지 않은 일을 연달아 겪어 여유가 없었던 탓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 6월호는 포장비닐을 뜯지도 않은 채 간직하고 있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살아가는 의미보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힘들다보니 원론적 질문은 다 부질없어 보였다. 수많은 학자들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삶, 그 자체를 말하려 했던 것일까? 첫 지면에 소개된 “런던 예술거리의 은밀함”(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2호)에서 아트딜러인 새디 콜스는 꽤 여유로워 보인다. 그가 하는 일은 예술가와 수집가 사이의 가교 역할이다. 그가 말하는 예술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어떤 것”이다. 과연 그럴까? 힘든 시기를 계속 겪다보니 그의 말처럼 예술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불과 몇 달 전에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1호: 맞춤법 검사에 ‘세월호’ 단어를 추가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1호: 맞춤법 검사에 ‘세월호’ 단어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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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편집기에 ‘세월호’를 입력하면 수정해야할 단어라며 빨간 밑줄이 표시된다. 뭘 수정하라는 거지? 넌 세월호도 모르니? 참 답답한 녀석이군. 맞춤법 검사/교정에 새 단어를 추가한다. 이제 문서편집기도 세월호를 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답답한 녀석이다. 2주년이 돼서야 이런 생각을 했으니. 세월호 참사 2주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적어도 내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조금씩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끝까지 밝혀줄게” 이렇게 하면 금세 뭔가 변할 줄 알았다. 실체 없는 국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대변하는 누군가가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죽음을 위로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참 순진한 생각이고 짧은 생각이란 걸 세월호 참사 2주년이 돼서야 알게 됐다. ..

문서편집기에 ‘세월호’를 입력하면 수정해야할 단어라며 빨간 밑줄이 표시된다. 뭘 수정하라는 거지? 넌 세월호도 모르니? 참 답답한 녀석이군. 맞춤법 검사/교정에 새 단어를 추가한다. 이제 문서편집기도 세월호를 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답답한 녀석이다. 2주년이 돼서야 이런 생각을 했으니. 세월호 참사 2주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적어도 내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조금씩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끝까지 밝혀줄게” 이렇게 하면 금세 뭔가 변할 줄 알았다. 실체 없는 국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대변하는 누군가가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죽음을 위로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참 순진한 생각이고 짧은 생각이란 걸 세월호 참사 2주년이 돼서야 알게 됐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2호: 출발선의 의미는 없다. 이미 누군가는 앞서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2호: 출발선의 의미는 없다. 이미 누군가는 앞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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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 브리고는 “미국 내 홈스쿨링 교육의 확산”(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2호)에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 향상이지만, 반대로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도 교육이라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바로 능력주의다.그가 말하는 교육은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학교교육제도다. 능력주의는 곧 무한경쟁을 의미한다. 무한경쟁에 밀려난 한 중학생은 자퇴, 엄밀히 말하면 정원 외 관리를 희망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고민을 묻는다. 또래 학생 혹은 비슷한 경험을 한 선배들은 대부분 후회하지 말고 버텨보라고 한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라는 충고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내 진심을 몰라주는 대답만 있을까?대부분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만, 고민을 묻던 중학생은 교육제도에 문제점을 느낀 것이라..

줄리앙 브리고는 “미국 내 홈스쿨링 교육의 확산”(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2호)에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 향상이지만, 반대로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도 교육이라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바로 능력주의다.그가 말하는 교육은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학교교육제도다. 능력주의는 곧 무한경쟁을 의미한다. 무한경쟁에 밀려난 한 중학생은 자퇴, 엄밀히 말하면 정원 외 관리를 희망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고민을 묻는다. 또래 학생 혹은 비슷한 경험을 한 선배들은 대부분 후회하지 말고 버텨보라고 한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라는 충고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내 진심을 몰라주는 대답만 있을까?대부분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만, 고민을 묻던 중학생은 교육제도에 문제점을 느낀 것이라..

사물의 철학: 가로등

사물의 철학: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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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은 “가로등은 가늘고 긴 몸통 위에 빛이 발산되는 머리가 아래쪽으로 구부러진 형상이다. 굽어보는 빛이 낮은 자리로 발산되어 주위를 평등하고 넓게 비춘다.”*고 말했지만 나는 가로등을 보면 ‘소외’가 떠오른다. 내게 있어 가로등은 차도 곳곳에 있는 그것이다. 낮 동안 자동차로 숨겨진 차도는 밤 동안 가로등 빛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차도의 존재를 진정 알 수 있는 때는 가로등이 존재를 드러내는 밤일게다. 낮 동안 비추는 빛으로 본 차도는 그다지 넓지 않게 느낀다. 버스를 타거나 자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좀 더 차도가 넓으면 빨리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행여나 공사로 차도가 막히면 우회할 도로를 찾게 된다. 그 선택 폭이 적으면 더 많은 차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밤 동안 비추는 ..

함돈균은 “가로등은 가늘고 긴 몸통 위에 빛이 발산되는 머리가 아래쪽으로 구부러진 형상이다. 굽어보는 빛이 낮은 자리로 발산되어 주위를 평등하고 넓게 비춘다.”*고 말했지만 나는 가로등을 보면 ‘소외’가 떠오른다. 내게 있어 가로등은 차도 곳곳에 있는 그것이다. 낮 동안 자동차로 숨겨진 차도는 밤 동안 가로등 빛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차도의 존재를 진정 알 수 있는 때는 가로등이 존재를 드러내는 밤일게다. 낮 동안 비추는 빛으로 본 차도는 그다지 넓지 않게 느낀다. 버스를 타거나 자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좀 더 차도가 넓으면 빨리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행여나 공사로 차도가 막히면 우회할 도로를 찾게 된다. 그 선택 폭이 적으면 더 많은 차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밤 동안 비추는 ..

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

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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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존재했음’이라 확인했다면, 존 버거는 좀 더 사진의 모호성을 파고들었다. 버거는 사진의 모호성은 “작품 ‘이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이 말만큼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다. 모호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하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따로따로인 것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로 모은 것은 따로따로인 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인지, 진실인지에 따라 투명성을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각각 사진이 모호하면 하나로 모은 것도 결국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닌가! 늘 여기서 오락가락하는 나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고 때문이라 진단하지만 진단만 있을 뿐 해결책이 없다. 이런 것은 어떨..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존재했음’이라 확인했다면, 존 버거는 좀 더 사진의 모호성을 파고들었다. 버거는 사진의 모호성은 “작품 ‘이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이 말만큼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다. 모호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하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따로따로인 것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로 모은 것은 따로따로인 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인지, 진실인지에 따라 투명성을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각각 사진이 모호하면 하나로 모은 것도 결국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닌가! 늘 여기서 오락가락하는 나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고 때문이라 진단하지만 진단만 있을 뿐 해결책이 없다. 이런 것은 어떨..

스완네 집 쪽으로: 생틸레르 종탑이 사라지고 있다

스완네 집 쪽으로: 생틸레르 종탑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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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너머 하늘에는 예전에 성 루이 왕을 응시하였고, 지금도 바라보는 듯한 첨탑이 솟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틸레르 종탑이다. 종탑은 “우리 마을의 모든 일, 모든 시간, 모든 관점에 형태를 주고 완성하고 축성하는 것”**이다. 생틸레르 종탑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아팠다. 살아온 동안 생틸레르 종탑과 같은 것이 있었을까? 너무 어린 시절은 기억조차 없고 기억이 쌓일 때는 이미 도심 한 곳에 살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심에서 오랜 기억을 품은 생틸레르 종탑과 같은 존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동인천 대한서림은 만나는 장소였다. 지금이야 손전화로 약속 장소가 담긴 지도를 보내주면 되지만, 손전화가 없던 시절은 누구나 알고 있고 찾기 쉬운 곳이 있었다. 만나는 장소가..

“광장 너머 하늘에는 예전에 성 루이 왕을 응시하였고, 지금도 바라보는 듯한 첨탑이 솟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틸레르 종탑이다. 종탑은 “우리 마을의 모든 일, 모든 시간, 모든 관점에 형태를 주고 완성하고 축성하는 것”**이다. 생틸레르 종탑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아팠다. 살아온 동안 생틸레르 종탑과 같은 것이 있었을까? 너무 어린 시절은 기억조차 없고 기억이 쌓일 때는 이미 도심 한 곳에 살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심에서 오랜 기억을 품은 생틸레르 종탑과 같은 존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동인천 대한서림은 만나는 장소였다. 지금이야 손전화로 약속 장소가 담긴 지도를 보내주면 되지만, 손전화가 없던 시절은 누구나 알고 있고 찾기 쉬운 곳이 있었다. 만나는 장소가..

소를 키우는 마르셀이 들려주는 사진의 의미

소를 키우는 마르셀이 들려주는 사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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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존 버거와 장 모르)는 사진 작업을 위해 산악지방에 살고 있는 농부와 생활을 한다. 마르셀은 그들과 함께했던 농부 가운데 한 명이다. 마르셀은 소 50마리를 키운다. 이틀 동안 사진가 모르는 마르셀과 생활하며 꽤 친해진 듯하다. 서로 마음을 열면 진실한 대화가 오고가곤 한다. 모르가 현상한 소 사진을 본 마르셀은 그런 것은 찍을 게 못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찍은 사진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 퉁명스럽게 말을 덧붙인다. 사람 얼굴을 찍을 거면 이렇게 쓱 잘라 찍지 말고 얼굴 전체 그리고 어깨까지 보이도록 찍어야 한다고 훈수를 둔다. 두 사진을 보면, 특히 눈 아래까지 내려온 짙은 눈썹은 묘하게 닮았다. 마치 두 사람이 만나 살다보면 성격뿐 아니라 외모도 닮는 것처럼. 얼굴 전체를 덮은 소..

두 친구(존 버거와 장 모르)는 사진 작업을 위해 산악지방에 살고 있는 농부와 생활을 한다. 마르셀은 그들과 함께했던 농부 가운데 한 명이다. 마르셀은 소 50마리를 키운다. 이틀 동안 사진가 모르는 마르셀과 생활하며 꽤 친해진 듯하다. 서로 마음을 열면 진실한 대화가 오고가곤 한다. 모르가 현상한 소 사진을 본 마르셀은 그런 것은 찍을 게 못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찍은 사진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 퉁명스럽게 말을 덧붙인다. 사람 얼굴을 찍을 거면 이렇게 쓱 잘라 찍지 말고 얼굴 전체 그리고 어깨까지 보이도록 찍어야 한다고 훈수를 둔다. 두 사진을 보면, 특히 눈 아래까지 내려온 짙은 눈썹은 묘하게 닮았다. 마치 두 사람이 만나 살다보면 성격뿐 아니라 외모도 닮는 것처럼. 얼굴 전체를 덮은 소..

말하기의 다른 방법: 읽었던 책을 다시 마주하는 날

말하기의 다른 방법: 읽었던 책을 다시 마주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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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처음 느낀 감동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는 드문데 흘러간 시간만큼 내가 달라진 게 이유일지 모른다. 지난 날,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나와 지금,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내가 같다면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그럼에도 다시 책을 꺼내들고 읽는다. 혹시나 처음 읽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내가 다시 책과 마주하는 동안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존 버거와 장 모르가 같이 작업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열심히 읽었다. ‘읽다’라는 말 그대로 그때는 정말 글만 읽었다. 어떤 사상을 알기 위해, 학문을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수집하고 비교했다. 그럼에도 길을 찾지 못해 여전히 헤매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처음 느낀 감동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는 드문데 흘러간 시간만큼 내가 달라진 게 이유일지 모른다. 지난 날,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나와 지금,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내가 같다면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그럼에도 다시 책을 꺼내들고 읽는다. 혹시나 처음 읽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내가 다시 책과 마주하는 동안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존 버거와 장 모르가 같이 작업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열심히 읽었다. ‘읽다’라는 말 그대로 그때는 정말 글만 읽었다. 어떤 사상을 알기 위해, 학문을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수집하고 비교했다. 그럼에도 길을 찾지 못해 여전히 헤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