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읽고 쓰기/1900년 이후의 미술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32개

1900년 이후의 미술사: 기계 복제 시대에 상실된 아우라를 사진 매체를 통해 극복하려 했던 앙드레 말로

1900년 이후의 미술사: 기계 복제 시대에 상실된 아우라를 사진 매체를 통해 극복하려 했던 앙드레 말로

보고 읽고 쓰기/1900년 이후의 미술사

오늘은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19세기 후반 스위스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이 말한 “어떤 대상을 미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의미의 문제가 된다.”〔298〕라는 말을 풀어보려 합니다. 사실,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발터 벤야민이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1935)에서 언급한 복제 방식을 통한 정치적 생산 논의와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말한 의미는 관계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기호학에서는 이것을 기호들 간의 가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적어 놓은 것을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가 이해하기 쉽게 일례를 들었습니다. “그리스 조각의 위대함을 이해하려면 수백의 그리스 조각들을 보느니 차라리 그것을 이집트나..

오늘은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19세기 후반 스위스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이 말한 “어떤 대상을 미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의미의 문제가 된다.”〔298〕라는 말을 풀어보려 합니다. 사실,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발터 벤야민이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1935)에서 언급한 복제 방식을 통한 정치적 생산 논의와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말한 의미는 관계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기호학에서는 이것을 기호들 간의 가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적어 놓은 것을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가 이해하기 쉽게 일례를 들었습니다. “그리스 조각의 위대함을 이해하려면 수백의 그리스 조각들을 보느니 차라리 그것을 이집트나..

1900년 이후의 미술사: 익명화 그리고 개성이 사라진 초상사진

1900년 이후의 미술사: 익명화 그리고 개성이 사라진 초상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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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이론을 궁금해 하는 사진가면 대부분 읽는다는 그의 짧은 글, 〈사진의 작은 역사〉와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 언급되고 있더군요. 대부분 후작 얘기라 예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전작부터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작은 역사〉를 읽은 분이라면, 외젠 아제의 적막한 파리 거리의 사진과 사진 표제를 강조하는 벤야민의 말이 인상 깊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벤야민은 늘 대상의 껍질을 벗겨 동등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전체주의에 이용되기도 했지만 말이죠. 어쨌거나 그는 부르주아라는 계급의 상실을 포착하는데 있어 사진이 기가 막힌 매체라고..

드디어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이론을 궁금해 하는 사진가면 대부분 읽는다는 그의 짧은 글, 〈사진의 작은 역사〉와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 언급되고 있더군요. 대부분 후작 얘기라 예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전작부터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작은 역사〉를 읽은 분이라면, 외젠 아제의 적막한 파리 거리의 사진과 사진 표제를 강조하는 벤야민의 말이 인상 깊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벤야민은 늘 대상의 껍질을 벗겨 동등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전체주의에 이용되기도 했지만 말이죠. 어쨌거나 그는 부르주아라는 계급의 상실을 포착하는데 있어 사진이 기가 막힌 매체라고..

1900년 이후의 미술사: 콩밭에서 콩을 찾는 심정으로 낯설게 하기

1900년 이후의 미술사: 콩밭에서 콩을 찾는 심정으로 낯설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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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의 개념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과 형식주의의 중심 개념 중의 하나다. 형식주의의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던 빅토르 스클로프스키는 그의 글 「과정으로서의 예술(Art as Process)」(1916)에서 “예술의 목적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봄으로써 대상의 감각을 전하는 것이다. 예술의 과정은 버성김과 소외의 과정이다. 예술에 있어서의 지각 과정은 그것 자체로서 목적이며 동시에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김우룡 엮음, 《사진과 텍스트》. 눈빛출판사. 2011. 74쪽. 요즘 공부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미술사입니다. 그러니까 특정 시대에 굵직한 상황과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 셈이죠. 책 제목이 《1900년 이후의 미술사》이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진을 살펴보기 위..

낯설게 하기의 개념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과 형식주의의 중심 개념 중의 하나다. 형식주의의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던 빅토르 스클로프스키는 그의 글 「과정으로서의 예술(Art as Process)」(1916)에서 “예술의 목적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봄으로써 대상의 감각을 전하는 것이다. 예술의 과정은 버성김과 소외의 과정이다. 예술에 있어서의 지각 과정은 그것 자체로서 목적이며 동시에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김우룡 엮음, 《사진과 텍스트》. 눈빛출판사. 2011. 74쪽. 요즘 공부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미술사입니다. 그러니까 특정 시대에 굵직한 상황과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 셈이죠. 책 제목이 《1900년 이후의 미술사》이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진을 살펴보기 위..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비정형의 임무는 무엇인가?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비정형의 임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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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바타유가 말했던 ‘비정형’은 (잘은 모르지만) 자크 데리다의 해체가 떠오릅니다. 먼저 그가 말하는 비정형 단어의 의미, 정확하게는 임무인데,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언급된 아래 글을 먼저 읽어보면, ‘비정형’의 임무는 그 자체로 형식, 혹은 분류의 문제가 되는 의미 체계 전반을 해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정형은 분류를 해체시킴으로써 사물들의 “지위를 강등시키거나” 폄하하며 사물들을 동일한 분류로 묶는 데 필요한 유사성이라는 토대와 단절시킨다.〔263〕 아마 그것의 첫 번째 임무는 파괴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 안으로만 들어가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아니 정말 있는 것인지도 잘 알 수 없는, 고유한 본질을 찾는다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임무 내용이 재밌다 느꼈던 것은 철거 후 ..

조르주 바타유가 말했던 ‘비정형’은 (잘은 모르지만) 자크 데리다의 해체가 떠오릅니다. 먼저 그가 말하는 비정형 단어의 의미, 정확하게는 임무인데,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언급된 아래 글을 먼저 읽어보면, ‘비정형’의 임무는 그 자체로 형식, 혹은 분류의 문제가 되는 의미 체계 전반을 해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정형은 분류를 해체시킴으로써 사물들의 “지위를 강등시키거나” 폄하하며 사물들을 동일한 분류로 묶는 데 필요한 유사성이라는 토대와 단절시킨다.〔263〕 아마 그것의 첫 번째 임무는 파괴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 안으로만 들어가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아니 정말 있는 것인지도 잘 알 수 없는, 고유한 본질을 찾는다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임무 내용이 재밌다 느꼈던 것은 철거 후 ..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바이마르 독일에 유행한 여행 사진 의미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바이마르 독일에 유행한 여행 사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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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바이마르 독일에 등장한 화보 잡지 열풍 속에서 여성 사진가의 활약이 돋보였던 장르는 여행 르포르타주입니다. 잠시 국내 얘기를 하자면, 일제강점기 때 국내를 방문한 오스트레일리아 입체 사진가, 조지 로스가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여성은 아닙니다만 당시 여행 사진의 목적을 설명하기에 적합합니다. 관광공사의 2007년 ‘조지로스가 본 100년 전 한국과 호주’ 보도 자료에 따르면, “당시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없던 대중들은 낯선 이국의 풍경을 담은 스테레오그래프 사진에 열광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전쟁 이후 망명 생활에서 비롯된 여행 사진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로테 야코비와 지젤 프로인트의 작업은 억압된 환경 속에서 세계 발전을 알리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1920~30년대 바이마르 독일에 등장한 화보 잡지 열풍 속에서 여성 사진가의 활약이 돋보였던 장르는 여행 르포르타주입니다. 잠시 국내 얘기를 하자면, 일제강점기 때 국내를 방문한 오스트레일리아 입체 사진가, 조지 로스가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여성은 아닙니다만 당시 여행 사진의 목적을 설명하기에 적합합니다. 관광공사의 2007년 ‘조지로스가 본 100년 전 한국과 호주’ 보도 자료에 따르면, “당시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없던 대중들은 낯선 이국의 풍경을 담은 스테레오그래프 사진에 열광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전쟁 이후 망명 생활에서 비롯된 여행 사진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로테 야코비와 지젤 프로인트의 작업은 억압된 환경 속에서 세계 발전을 알리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1900년 이후의 미술사: 1920년대 사진사에서 중요한 두 여성의 자화상

1900년 이후의 미술사: 1920년대 사진사에서 중요한 두 여성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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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여성 사진가를 다시 살펴봅니다. 게르마인네 크룰(Germaine Krull, 1897-1985)과 로테 야코비(Lotte Jacobi, 1896-1990)가 그들인데,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는 “20년대 사진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주인공의 자화상 사진을 비교해 보면, 바이마르 여성들의 사진의 특징과 거기에 구현된 긴장감이 보다 분명해진다.”〔258〕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진가의 눈과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겹치는 이런 초상 사진은 요즘 많은 사진가 프로필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반면, 야코비의 초상 사진은 (이곳에서 볼 수 없지만) 자신과 카메라가 함께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리모컨 선이 꼭 쥐여있습니다. 차이가 느껴지는지요? 결국 주체의 문제입니다. 사진 행위..

어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여성 사진가를 다시 살펴봅니다. 게르마인네 크룰(Germaine Krull, 1897-1985)과 로테 야코비(Lotte Jacobi, 1896-1990)가 그들인데,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는 “20년대 사진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주인공의 자화상 사진을 비교해 보면, 바이마르 여성들의 사진의 특징과 거기에 구현된 긴장감이 보다 분명해진다.”〔258〕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진가의 눈과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겹치는 이런 초상 사진은 요즘 많은 사진가 프로필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반면, 야코비의 초상 사진은 (이곳에서 볼 수 없지만) 자신과 카메라가 함께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리모컨 선이 꼭 쥐여있습니다. 차이가 느껴지는지요? 결국 주체의 문제입니다. 사진 행위..

1900년 이후의 미술사: 화보 잡지와 신여성 등장

1900년 이후의 미술사: 화보 잡지와 신여성 등장

보고 읽고 쓰기/1900년 이후의 미술사

과거 산업화 시기 여성의 경제참여율 상승에 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을 《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AS1900)에서 읽었습니다. “20~30년대 바이마르 독일에서 등장한 대중 소비자와 패션 잡지가 사진의 제작과 배포에 대한 새로운 구조”〔258〕로 여성 사진가들의 등장을 도왔다고 합니다. 1925년 독일에는 1150만 명의 여성(전체 노동자 수의 35.8퍼센트)이 전문 인력이었으나, 이들 대부분은 대량생산 하층 노동자, 화이트컬러 노동자, 그리고 상점 판매원들입니다. 과연 여성 사진가는 얼마나 있었을까요? 정확한 수치가 없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933년 나치 정부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쇄되기까지 열한 명의 전문 여성 사진가가 사진 과..

과거 산업화 시기 여성의 경제참여율 상승에 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을 《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AS1900)에서 읽었습니다. “20~30년대 바이마르 독일에서 등장한 대중 소비자와 패션 잡지가 사진의 제작과 배포에 대한 새로운 구조”〔258〕로 여성 사진가들의 등장을 도왔다고 합니다. 1925년 독일에는 1150만 명의 여성(전체 노동자 수의 35.8퍼센트)이 전문 인력이었으나, 이들 대부분은 대량생산 하층 노동자, 화이트컬러 노동자, 그리고 상점 판매원들입니다. 과연 여성 사진가는 얼마나 있었을까요? 정확한 수치가 없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933년 나치 정부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쇄되기까지 열한 명의 전문 여성 사진가가 사진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