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읽고 쓰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14 Page) 273개

이창훈: 또 다른 풍경 - 헤테로토피아, 같지만 다른 풍경

이창훈: 또 다른 풍경 - 헤테로토피아, 같지만 다른 풍경

보고 읽고 쓰기/전시회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들의 비평행적 진화 : 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가? 아마도 이번 주제는 ‘세계 책의 수도 인천’과 무관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어두운 조명 아래서 전시 소개 글을 읽는데 애를 먹었다. 놓인 인쇄물이 흐릿한 탓이다. 작품을 비추는 조명의 도움으로 어렵게 글을 읽었다. 그건 그렇고 재미있는 전시이다. '책'으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이창훈의 '또 다른 풍경-헤테로토피아'를 즐겁게 봤다. 나는 작업에서 소마미술관의 인공연못 물을 해수(海水)로 바꾸어 채우는 작업을 하였다. 해수는 원래에 있어야 할 곳에서는 생명의 원천이라는 근원적 요소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단지 그곳에서 옮기어져 새로운 이곳 장소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서 작용한다. 생..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들의 비평행적 진화 : 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가? 아마도 이번 주제는 ‘세계 책의 수도 인천’과 무관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어두운 조명 아래서 전시 소개 글을 읽는데 애를 먹었다. 놓인 인쇄물이 흐릿한 탓이다. 작품을 비추는 조명의 도움으로 어렵게 글을 읽었다. 그건 그렇고 재미있는 전시이다. '책'으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이창훈의 '또 다른 풍경-헤테로토피아'를 즐겁게 봤다. 나는 작업에서 소마미술관의 인공연못 물을 해수(海水)로 바꾸어 채우는 작업을 하였다. 해수는 원래에 있어야 할 곳에서는 생명의 원천이라는 근원적 요소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단지 그곳에서 옮기어져 새로운 이곳 장소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서 작용한다. 생..

방랑: 은염사진

방랑: 은염사진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화도 나고, 낙심도 하고, 기뻐 날뛰고 미친 듯 열광하기도 했지만, 평범한 순간들도 있었다.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가장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눈으로 가능한 자연스럽게 사물을 바라볼 때도 있었다. 바로 그렇게 보고 싶었다. 예외적 순간에 반하는 순간이다. 방랑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특별한 순간, 결정적 순간, 예외적 순간 같은 것이 어디 있을까? 일상의 순간들이 있을 뿐인데.레몽 드파르동. 《방랑 ERRANCE》. 정진국 옮김. 포토넷. 2015. 22쪽. “가장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눈”으로 작가를 드러내지 않고 사진을 찍는 방식은 신즉물주의 방식인데, 멜랑콜리하며 텅 빈 거리, 사물로 가득한 드파르동의 사진은 그것 그대로이다. 마치 늘 똑같은 사진만 찍은 듯하다. 《방랑》에 담은 사진 일흔 장은 그..

화도 나고, 낙심도 하고, 기뻐 날뛰고 미친 듯 열광하기도 했지만, 평범한 순간들도 있었다.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가장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눈으로 가능한 자연스럽게 사물을 바라볼 때도 있었다. 바로 그렇게 보고 싶었다. 예외적 순간에 반하는 순간이다. 방랑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특별한 순간, 결정적 순간, 예외적 순간 같은 것이 어디 있을까? 일상의 순간들이 있을 뿐인데.레몽 드파르동. 《방랑 ERRANCE》. 정진국 옮김. 포토넷. 2015. 22쪽. “가장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눈”으로 작가를 드러내지 않고 사진을 찍는 방식은 신즉물주의 방식인데, 멜랑콜리하며 텅 빈 거리, 사물로 가득한 드파르동의 사진은 그것 그대로이다. 마치 늘 똑같은 사진만 찍은 듯하다. 《방랑》에 담은 사진 일흔 장은 그..

1900년 이후의 미술사: 텅 빔, 무표정, 중성을 드러내는 반모더니즘

1900년 이후의 미술사: 텅 빔, 무표정, 중성을 드러내는 반모더니즘

보고 읽고 쓰기/1900년 이후의 미술사

스트루트와 루프의 초기 작업이 물질적인 지지체로서나 장인적 기술의 수단으로서나 시대에 뒤처진 흑백사진을 고수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조르조 데 키리코의 회화에서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반(反)모더니즘적 충동이 여기에서도 작동하는지, 작동한다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반(反)모더니즘이란 현재를 멜랑콜리아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 선진 과학 기술의 생산 수단과 필연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아방가르드 모델과 단절하며, 상실의 조건에서 어떻게 기억을 재구성하는가와 같이 전후 시기의 중대한 질문을 배경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 것을 뜻한다.《1900년 이후의 미술사》. 세미콜론. 2012. 569쪽. 토마스 스트루트(Thomas Struth, 1954~)와 토마스 루프(Thomas Ruff, ..

스트루트와 루프의 초기 작업이 물질적인 지지체로서나 장인적 기술의 수단으로서나 시대에 뒤처진 흑백사진을 고수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조르조 데 키리코의 회화에서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반(反)모더니즘적 충동이 여기에서도 작동하는지, 작동한다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반(反)모더니즘이란 현재를 멜랑콜리아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 선진 과학 기술의 생산 수단과 필연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아방가르드 모델과 단절하며, 상실의 조건에서 어떻게 기억을 재구성하는가와 같이 전후 시기의 중대한 질문을 배경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 것을 뜻한다.《1900년 이후의 미술사》. 세미콜론. 2012. 569쪽. 토마스 스트루트(Thomas Struth, 1954~)와 토마스 루프(Thomas Ruff, ..

방랑: 중력 삐에로

방랑: 중력 삐에로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방랑은 마땅한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늘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중간지대를 찾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뭘 하지?”레몽 드파르동. 《방랑 ERRANCE》. 정진국 옮김. 포토넷. 2015. 16쪽. 드파르동이 자주 찾던 아프리카, 뉴욕, 그런 익숙한 곳에서 그의 방랑 시도는 수포로 돌아간다. 드파르동은 그것을 ‘중간지대를 찾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중간계란 무엇인가. 현실에서 중간계가 존재하는가. 중간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드파르동은 정확히 어떤 중간점이 아니라 시작 혹은 끝을 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개념을 말하는 것일까? 드파르동이 언급한 중간계는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세계로 보인다. 사진기자도 아닌 나, 사진작가도 아닌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떤 세계로 말이다. 그..

방랑은 마땅한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늘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중간지대를 찾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뭘 하지?”레몽 드파르동. 《방랑 ERRANCE》. 정진국 옮김. 포토넷. 2015. 16쪽. 드파르동이 자주 찾던 아프리카, 뉴욕, 그런 익숙한 곳에서 그의 방랑 시도는 수포로 돌아간다. 드파르동은 그것을 ‘중간지대를 찾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중간계란 무엇인가. 현실에서 중간계가 존재하는가. 중간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드파르동은 정확히 어떤 중간점이 아니라 시작 혹은 끝을 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개념을 말하는 것일까? 드파르동이 언급한 중간계는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세계로 보인다. 사진기자도 아닌 나, 사진작가도 아닌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떤 세계로 말이다. 그..

방랑: 혼자, 홀로, 외로움의 반동

방랑: 혼자, 홀로, 외로움의 반동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레몽 드파르동이 《방랑》에서 언급한 ‘중간계’, 그것이 떠오르는 글을 만났다. 그것도 글을 여는 글에서… 이 책의 필요성은 오늘날 사랑의 담론이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담론은 아마도 수많은 주체들에(누가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의해 말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보호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주변의 언어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또는 무시되고, 헐뜯어지고, 웃음거리가 되어 왔다. 권력에서 단절되었을 뿐 아니라, 그 메커니즘(과학·지식·예술)과도 단절된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담론이 모든 군생 집단 밖으로 추방당하여 스스로의 힘에 의해 비실제적인 것 안으로 표류하게 되면, 그때 그것은 긍정의 장소가―비록 미미..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레몽 드파르동이 《방랑》에서 언급한 ‘중간계’, 그것이 떠오르는 글을 만났다. 그것도 글을 여는 글에서… 이 책의 필요성은 오늘날 사랑의 담론이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담론은 아마도 수많은 주체들에(누가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의해 말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보호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주변의 언어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또는 무시되고, 헐뜯어지고, 웃음거리가 되어 왔다. 권력에서 단절되었을 뿐 아니라, 그 메커니즘(과학·지식·예술)과도 단절된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담론이 모든 군생 집단 밖으로 추방당하여 스스로의 힘에 의해 비실제적인 것 안으로 표류하게 되면, 그때 그것은 긍정의 장소가―비록 미미..

방랑: 멜랑콜리한 사진

방랑: 멜랑콜리한 사진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어쨌든 과민한 강박증을 채우려고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사진가들이, 살아 있는 사람이든 뭐든 살아 있는 것들의 이야기를 포착하고 또 사진을 세상 사람들과 형상으로 차근차근 채우려 하는 것이 싫다. 이 세상이 이런저런 사람들로 넘치는 별이라며 안심시키려 하는 듯한 태도가 싫다. 왜 텅 빈 것을 그렇게 무서워할까?레몽 드파르동. 《방랑 ERRANCE》. 정진국 옮김. 포토넷. 2015. 9쪽. 보통 “길을 잃고 헤매다. 길을 잘못 들어서다.”를 뜻하는 ‘방랑’은 중세 라틴어 어원 ‘이테라르(iterar)'에서 “여행하다. 곧장 제 길을 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곧장 길을 가던 것이 길을 잃은 것인지. 《방랑》은 이렇게 흥미로운 말풀이로 시작한다. 산책이나 여행은 어떤 목적성이 있는데, 방랑은..

어쨌든 과민한 강박증을 채우려고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사진가들이, 살아 있는 사람이든 뭐든 살아 있는 것들의 이야기를 포착하고 또 사진을 세상 사람들과 형상으로 차근차근 채우려 하는 것이 싫다. 이 세상이 이런저런 사람들로 넘치는 별이라며 안심시키려 하는 듯한 태도가 싫다. 왜 텅 빈 것을 그렇게 무서워할까?레몽 드파르동. 《방랑 ERRANCE》. 정진국 옮김. 포토넷. 2015. 9쪽. 보통 “길을 잃고 헤매다. 길을 잘못 들어서다.”를 뜻하는 ‘방랑’은 중세 라틴어 어원 ‘이테라르(iterar)'에서 “여행하다. 곧장 제 길을 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곧장 길을 가던 것이 길을 잃은 것인지. 《방랑》은 이렇게 흥미로운 말풀이로 시작한다. 산책이나 여행은 어떤 목적성이 있는데, 방랑은..

존재와 무: 죽음-기억, 죽음-망각

존재와 무: 죽음-기억, 죽음-망각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변광배의 《존재와 무》에서 궁금했던 것 중 한 가지가 ‘죽음’에 관한 것이다. 의식은 두 가지 경우에 의식이 아닌 것이 되는데, 그 첫 번째가 죽음이고 두 번째가 자기기만이다. 또한 죽음이라는 것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으로 자유로운 결정과는 대척을 이룬다. 그렇다면, 사회와 떨어져 홀로 생활하는 이는 삶은 어떤 의미인가. 더불어 그의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이런 것을 고민하던 중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죽는다는 것은 사회적 관련하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그 가장 극단적인 예가 로빈슨이겠지만―죽지 않는다. 그는 사라져 없어질 뿐이다. 죽는다는 것은 남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으나, 육체적으로는 접촉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 다시 말해..

변광배의 《존재와 무》에서 궁금했던 것 중 한 가지가 ‘죽음’에 관한 것이다. 의식은 두 가지 경우에 의식이 아닌 것이 되는데, 그 첫 번째가 죽음이고 두 번째가 자기기만이다. 또한 죽음이라는 것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으로 자유로운 결정과는 대척을 이룬다. 그렇다면, 사회와 떨어져 홀로 생활하는 이는 삶은 어떤 의미인가. 더불어 그의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이런 것을 고민하던 중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죽는다는 것은 사회적 관련하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그 가장 극단적인 예가 로빈슨이겠지만―죽지 않는다. 그는 사라져 없어질 뿐이다. 죽는다는 것은 남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으나, 육체적으로는 접촉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 다시 말해..

마법의 공간, 냉장고

마법의 공간,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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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이 일 년이나 남은 것도 냉장고에 들어가면 어느 순간 유통기한이 일 년이나 지나있다. 냉장고는 참으로 마법의 공간이다. 2016-4-7 철학자 강신주 또한 문학평론가 함돈균과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냉장고가 없었다면 마법과 같은 시간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소비를 위해 무한한 도축과 포획도 없었을 것이다. 냉장고가 ‘부활’과 ‘보존’의 타임머신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냉장고라는 저장고가 없었더라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동물 도축과 바다생물 포획으로 이루어진 현대의 음식 문명이 가능했을까. 가끔씩 인간의 천국이 동물들의 지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함돈균, 『사물의 철학』, 세종서적, 2015, 46쪽

유통기한이 일 년이나 남은 것도 냉장고에 들어가면 어느 순간 유통기한이 일 년이나 지나있다. 냉장고는 참으로 마법의 공간이다. 2016-4-7 철학자 강신주 또한 문학평론가 함돈균과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냉장고가 없었다면 마법과 같은 시간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소비를 위해 무한한 도축과 포획도 없었을 것이다. 냉장고가 ‘부활’과 ‘보존’의 타임머신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냉장고라는 저장고가 없었더라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동물 도축과 바다생물 포획으로 이루어진 현대의 음식 문명이 가능했을까. 가끔씩 인간의 천국이 동물들의 지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함돈균, 『사물의 철학』, 세종서적, 2015, 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