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 태그의 글 목록 40개

밝은 방: 27(알아보기)

밝은 방: 27(알아보기)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도대체 꿈속에서는 보는 것일까, 아는 것일까”*라는 바르트의 말이 인상 깊다. 바르트가 쓴 글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바르트가 쓴 글이다. 그럼에도 말이라 하고 싶은 이유는, 고서를 읽는 것은 옛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사람이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것은 말의 형태일 것이다. 그래서 난 글보단 말이라 적길 좋아한다. 바르트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바르트가 사진 속에서 본 어머니는 그가 알고 있는 어머니가 아니라는 소리다. “때때로 나는 어머니의 얼굴의 한 부분, 코와 이마와의 비례, 팔과 손의 움직임 등을 알아보았다.”** 이처럼 바르트는 부분으로 어머니를 알아보았지만 온전한 어머니의 모습을 알아보진 못했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

“도대체 꿈속에서는 보는 것일까, 아는 것일까”*라는 바르트의 말이 인상 깊다. 바르트가 쓴 글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바르트가 쓴 글이다. 그럼에도 말이라 하고 싶은 이유는, 고서를 읽는 것은 옛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사람이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것은 말의 형태일 것이다. 그래서 난 글보단 말이라 적길 좋아한다. 바르트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바르트가 사진 속에서 본 어머니는 그가 알고 있는 어머니가 아니라는 소리다. “때때로 나는 어머니의 얼굴의 한 부분, 코와 이마와의 비례, 팔과 손의 움직임 등을 알아보았다.”** 이처럼 바르트는 부분으로 어머니를 알아보았지만 온전한 어머니의 모습을 알아보진 못했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

밝은 방: 26(분리로써의 역사)

밝은 방: 26(분리로써의 역사)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바르트는 옛 사진들을 정리하며 어머니를 회상한다. 물론, 결코 떠올릴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사진 속 어머니는 그가 알고 있는 어머니가 아니며 결코 알 수 도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바르트가 포착한 어머니의 모습은 ‘역사’ 안에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역사는 “우리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기간”*을 뜻한다. 그는 그가 태어나기 전 그의 어머니의 모습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역사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포착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장식구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주의력은 어머니로부터, 지금은 사라져 버린 장신구로 옮겨간다. 옷의 유행이란 결국 사라지게 마련이어서,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2의 무덤을 만들어 준다.”** 그렇다. 우리가 고인을 떠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살아생전 몸..

바르트는 옛 사진들을 정리하며 어머니를 회상한다. 물론, 결코 떠올릴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사진 속 어머니는 그가 알고 있는 어머니가 아니며 결코 알 수 도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바르트가 포착한 어머니의 모습은 ‘역사’ 안에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역사는 “우리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기간”*을 뜻한다. 그는 그가 태어나기 전 그의 어머니의 모습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역사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포착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장식구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주의력은 어머니로부터, 지금은 사라져 버린 장신구로 옮겨간다. 옷의 유행이란 결국 사라지게 마련이어서,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2의 무덤을 만들어 준다.”** 그렇다. 우리가 고인을 떠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살아생전 몸..

밝은 방: 25(어느 날 저녁)

밝은 방: 25(어느 날 저녁)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오랜만에 읽는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 무슨 이유인지 감회가 새롭다. 방금 트위터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월간 사진 잡지 에 대한 얘기지만 새로움을 느낀 지금 감정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포토닷 4월호가 오면 '사진을 본다'는 것과 '사진을 읽는다'는 것, 이 두 가지 관점에서 포토닷을 보고, 읽을 생각이다. 늘 그랬지만, 난 사진을 본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번 호는 그런 점에 상당히 부합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몇 개월이 지나 읽는 밝은 방을 2부는 잔잔하다. 바르트의 목소리가 이토록 차분했던가? 다른 책에서 읽은 얘기인데 바르트는 꽤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강인함과 유연함이 공존한다고 한다. 그런 목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2부에서 들려주는 목소..

오랜만에 읽는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 무슨 이유인지 감회가 새롭다. 방금 트위터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월간 사진 잡지 에 대한 얘기지만 새로움을 느낀 지금 감정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포토닷 4월호가 오면 '사진을 본다'는 것과 '사진을 읽는다'는 것, 이 두 가지 관점에서 포토닷을 보고, 읽을 생각이다. 늘 그랬지만, 난 사진을 본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번 호는 그런 점에 상당히 부합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몇 개월이 지나 읽는 밝은 방을 2부는 잔잔하다. 바르트의 목소리가 이토록 차분했던가? 다른 책에서 읽은 얘기인데 바르트는 꽤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강인함과 유연함이 공존한다고 한다. 그런 목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2부에서 들려주는 목소..

미로를 만드는 저자와 미로를 찾는 독자

미로를 만드는 저자와 미로를 찾는 독자

열정으로 찍은 사진, 냉정하게 적은 글

책은 더할 수 없는 물질이다. 반면, 텍스트는 손으로 잡을 수 없다. ‘저자의 죽음’에서 저자는 생산자 측면보다 신화 측면이 강하다. 신화가 죽고 다른 생산자가 출현한다. 그것이 바로 독자다. 저자가 작품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저자가 이제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저자는 미로를 개설한다. 중요한 것은 그 미로는 독자를 위한 것이다. 미로의 시작은 존재하지만,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는 저자가 만든 미로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며 저자가 만든 미로를 따라간다. 그 과정을 즐기며 또 다른 미로를 생산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하나의 텍스트가 탄생한다. 저자와 독자의 만남은 진실을 말하는 저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에 달라붙는 다양한 의미를 생산..

책은 더할 수 없는 물질이다. 반면, 텍스트는 손으로 잡을 수 없다. ‘저자의 죽음’에서 저자는 생산자 측면보다 신화 측면이 강하다. 신화가 죽고 다른 생산자가 출현한다. 그것이 바로 독자다. 저자가 작품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저자가 이제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저자는 미로를 개설한다. 중요한 것은 그 미로는 독자를 위한 것이다. 미로의 시작은 존재하지만,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는 저자가 만든 미로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며 저자가 만든 미로를 따라간다. 그 과정을 즐기며 또 다른 미로를 생산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하나의 텍스트가 탄생한다. 저자와 독자의 만남은 진실을 말하는 저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에 달라붙는 다양한 의미를 생산..

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

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존재했음’이라 확인했다면, 존 버거는 좀 더 사진의 모호성을 파고들었다. 버거는 사진의 모호성은 “작품 ‘이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이 말만큼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다. 모호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하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따로따로인 것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로 모은 것은 따로따로인 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인지, 진실인지에 따라 투명성을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각각 사진이 모호하면 하나로 모은 것도 결국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닌가! 늘 여기서 오락가락하는 나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고 때문이라 진단하지만 진단만 있을 뿐 해결책이 없다. 이런 것은 어떨..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존재했음’이라 확인했다면, 존 버거는 좀 더 사진의 모호성을 파고들었다. 버거는 사진의 모호성은 “작품 ‘이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이 말만큼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다. 모호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하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따로따로인 것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로 모은 것은 따로따로인 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인지, 진실인지에 따라 투명성을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각각 사진이 모호하면 하나로 모은 것도 결국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닌가! 늘 여기서 오락가락하는 나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고 때문이라 진단하지만 진단만 있을 뿐 해결책이 없다. 이런 것은 어떨..

밝은 방: 24(취소의 말)

밝은 방: 24(취소의 말)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바르트는 앞서 “사진은 순수한 우연성이며, 오직 우연일 뿐”이라 했다. 그는 이런 우연한 사진으로부터 그 본질을 찾는 탐구를 시작했고 그 매개자로 ‘나’를 선택했다. 이것은 모든 것에 들어맞는 것이 아닌 따로따로 들어맞는 앎이다. 1장부터 시작해 23장에 이르는 글이 바로 그 탐구의 기록이다. 지금까지 그가 분류한 사진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뿐만 아니라 판단을 멈추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즉,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스투디움이며 판단을 멈추는 행위는 푼크툼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나의 기쁨은 불완전한 중재인이었음을, 향락주의적인 계획으로 축소된 주관성은 보편적인 것을 알아볼 수 없음을 인정”*하며 취소의 말을 적는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이것이 정말 의미 없는 탐구였을까? 그러..

바르트는 앞서 “사진은 순수한 우연성이며, 오직 우연일 뿐”이라 했다. 그는 이런 우연한 사진으로부터 그 본질을 찾는 탐구를 시작했고 그 매개자로 ‘나’를 선택했다. 이것은 모든 것에 들어맞는 것이 아닌 따로따로 들어맞는 앎이다. 1장부터 시작해 23장에 이르는 글이 바로 그 탐구의 기록이다. 지금까지 그가 분류한 사진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뿐만 아니라 판단을 멈추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즉,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스투디움이며 판단을 멈추는 행위는 푼크툼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나의 기쁨은 불완전한 중재인이었음을, 향락주의적인 계획으로 축소된 주관성은 보편적인 것을 알아볼 수 없음을 인정”*하며 취소의 말을 적는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이것이 정말 의미 없는 탐구였을까? 그러..

밝은 방: 23(가려진 시야)

밝은 방: 23(가려진 시야)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때로는 글쓴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일부 단락이나 문장만을 다루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특히나 이번 장은 뒷장에 언급된 말 때문에 더 정리가 쉽지 않다. 바로 지금까지 적은 글은 취소의 글이라는 바르트의 말 때문이다. 취소의 글이라는 의미(역자는 개영시라고 언급한)는 바로 다음 글에 정리할 참이다. 사실, 이번 장을 정리한다고 적은 글을 다시 읽으니 24장을 정리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만큼 점점 더 책이 내게 주는 의미가 깊어짐을 느낀다. 23장에 언급된 ‘막힌 시야’의 의미는 에드문트 후설의 설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어떤 대상에서 출발하여 자유로운 상상에 의해서 무한히 많은 모상을 만들어 가면, 이 모상의 다..

때로는 글쓴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일부 단락이나 문장만을 다루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특히나 이번 장은 뒷장에 언급된 말 때문에 더 정리가 쉽지 않다. 바로 지금까지 적은 글은 취소의 글이라는 바르트의 말 때문이다. 취소의 글이라는 의미(역자는 개영시라고 언급한)는 바로 다음 글에 정리할 참이다. 사실, 이번 장을 정리한다고 적은 글을 다시 읽으니 24장을 정리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만큼 점점 더 책이 내게 주는 의미가 깊어짐을 느낀다. 23장에 언급된 ‘막힌 시야’의 의미는 에드문트 후설의 설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어떤 대상에서 출발하여 자유로운 상상에 의해서 무한히 많은 모상을 만들어 가면, 이 모상의 다..

밝은 방: 22(사후에 그리고 침묵)

밝은 방: 22(사후에 그리고 침묵)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점점 책 전체를 둘로 나누면 앞부분에 해당하는 끝 지점이 가까워진다. 관련 있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요즘, 『현상학이란 무엇인가』(그린비, 2011)를 짬짬이 읽고 있다. 더불어 올해는 에드문트 후설이 쓴 국내 번역본을 읽어볼 참이다. 후설 필독서라고 하는 책들은 모두 오래된 책이라 판이 끊겼다.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뒤를 돌아 뭔가를 찾고 싶은데 정작 뒤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없는 셈이다. 어쨌든, 현상학에서 언급하는 ‘환원’, 그것이 바르트가 책 앞부분에서 떠난 출발이자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투디움은 결국 언제나 약호화되지만”* 푼크툼은 그렇지 않다. 푼크툼은 내가 이름 지을 수 없는 것, 은연 중 숨어 있다가 홀연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그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점점 책 전체를 둘로 나누면 앞부분에 해당하는 끝 지점이 가까워진다. 관련 있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요즘, 『현상학이란 무엇인가』(그린비, 2011)를 짬짬이 읽고 있다. 더불어 올해는 에드문트 후설이 쓴 국내 번역본을 읽어볼 참이다. 후설 필독서라고 하는 책들은 모두 오래된 책이라 판이 끊겼다.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뒤를 돌아 뭔가를 찾고 싶은데 정작 뒤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없는 셈이다. 어쨌든, 현상학에서 언급하는 ‘환원’, 그것이 바르트가 책 앞부분에서 떠난 출발이자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투디움은 결국 언제나 약호화되지만”* 푼크툼은 그렇지 않다. 푼크툼은 내가 이름 지을 수 없는 것, 은연 중 숨어 있다가 홀연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그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뒤늦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