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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난다 -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 질문에 따른 관찰

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난다 -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 질문에 따른 관찰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책 중반을 넘어가면서 점점 난해해지지만 점점 확실해지는 것도 있다. 왜 저널탐사, 즉 관찰이 중요한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걸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관찰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 수 있다. 질서는 아주 작은 균열을 발견하면 혼란으로 인식된다.사진 작업을 하는 개인 혹은 단체 가운데 사진 작업의 목적이 ‘수집’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최대한 촬영자의 의식을 배제하고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겨 언제 사용될지는 모르지만, 훗날 가치 있는 작업이길 바란다. 꽤 그럴 듯하다. 늘 의문이 드는 것은 ‘의식 배제’의 가능성이다. 촬영자가 의식적으로 의식을 배제하며 무의식적으로 촬영을 하면 무덤덤하고 객관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사실,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전제와 중..

책 중반을 넘어가면서 점점 난해해지지만 점점 확실해지는 것도 있다. 왜 저널탐사, 즉 관찰이 중요한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걸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관찰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 수 있다. 질서는 아주 작은 균열을 발견하면 혼란으로 인식된다.사진 작업을 하는 개인 혹은 단체 가운데 사진 작업의 목적이 ‘수집’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최대한 촬영자의 의식을 배제하고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겨 언제 사용될지는 모르지만, 훗날 가치 있는 작업이길 바란다. 꽤 그럴 듯하다. 늘 의문이 드는 것은 ‘의식 배제’의 가능성이다. 촬영자가 의식적으로 의식을 배제하며 무의식적으로 촬영을 하면 무덤덤하고 객관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사실,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전제와 중..

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난다 -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 법칙, 결과, 사례

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난다 -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 법칙, 결과, 사례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가추법이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한 귀납법과 연역법을 조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해하다. 귀납 추론은 법칙을 연역 추론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추론방식이다. 전자는 경험적 사실로부터 진리 가능성을 따지지만, 후자는 논리적 타당성을 따진다. 귀납 추론은 사례와 결과를 보고 법칙을 도출한다. 귀납 추론의 진리 여부는 늘 경험하지 못 한 사례와 결과에 의존하기 때문에 법칙의 진리를 증명할 수 없다. 연역 추론은 법칙과 사례에서 결과를 도출한다. 법칙과 사례 그리고 결과는 논리적 타당성을 따르며 전제로부터 필연성을 가진 결과를 이끌어 낸다. 연역법(법칙과 사례에서 결과를 도출)법칙 이 주머니에서 나온 콩은 모두 하얗다. 사례 이 콩들은 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 결과 이 콩들은 하얗다.귀납법(..

가추법이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한 귀납법과 연역법을 조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해하다. 귀납 추론은 법칙을 연역 추론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추론방식이다. 전자는 경험적 사실로부터 진리 가능성을 따지지만, 후자는 논리적 타당성을 따진다. 귀납 추론은 사례와 결과를 보고 법칙을 도출한다. 귀납 추론의 진리 여부는 늘 경험하지 못 한 사례와 결과에 의존하기 때문에 법칙의 진리를 증명할 수 없다. 연역 추론은 법칙과 사례에서 결과를 도출한다. 법칙과 사례 그리고 결과는 논리적 타당성을 따르며 전제로부터 필연성을 가진 결과를 이끌어 낸다. 연역법(법칙과 사례에서 결과를 도출)법칙 이 주머니에서 나온 콩은 모두 하얗다. 사례 이 콩들은 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 결과 이 콩들은 하얗다.귀납법(..

'이미지와 텍스트' 기억 저장소로서의 디지털 이미지

'이미지와 텍스트' 기억 저장소로서의 디지털 이미지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는 대화라 할 수 있다. 나와 너 혹은 나와 특정집단에 속한 우리와의 대화이다. 연서가 그렇고 가족에게 보내는 안부 인사가 그렇다.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폐쇄적인 특징이 있는데 메시지는 허락된 이(들)에게만 전달돼야하며 읽을 수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 일기는 나만 볼 수 있다는 무언의 계약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 일기를 볼 때 뭔가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무언의 계약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가 폐쇄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였다면,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는 열린 공간에서 담론을 이끌어내는 대화를 구성한다. 물론, 디지털 공간에도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와 같은 폐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는 대화라 할 수 있다. 나와 너 혹은 나와 특정집단에 속한 우리와의 대화이다. 연서가 그렇고 가족에게 보내는 안부 인사가 그렇다.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폐쇄적인 특징이 있는데 메시지는 허락된 이(들)에게만 전달돼야하며 읽을 수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 일기는 나만 볼 수 있다는 무언의 계약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 일기를 볼 때 뭔가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무언의 계약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가 폐쇄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였다면,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는 열린 공간에서 담론을 이끌어내는 대화를 구성한다. 물론, 디지털 공간에도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와 같은 폐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이미지와 텍스트' 노동으로써의 편지, 그림엽서 그리고 전보

'이미지와 텍스트' 노동으로써의 편지, 그림엽서 그리고 전보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편지 지금 내가 써내려가는 하얀 공책처럼 편지지에 손 글씨로 써내려간 글은 편지를 받는 이(수신자)를 위한, 수신자만을 위한 말의 흔적이다. 수신자는 편지에 적힌 글씨를 통해 글을 쓴 이(발신자)를 떠올린다. 선명하지는 않겠지만, 수신자는 마지막으로 봤던 발신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편지를 읽는다. 수신자는 발신자가 그의 손으로 쓴 글 표면의 굴곡을 따라 발신자를 만난다. 편지는 단지 말의 흔적이기 보다는 발신자의 신체이자 곧 그 자체를 엿볼 수 있는 매개이다. 전보(1830년대) 전보는 발신자가 적은 메시지를 전기신호로 변환 후 편지 혹은 엽서와 같은 형태로 변환된다. 발신자가 신체를 통해 작성한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발신자가 편지 방식으로 작성된 메시지는 전기신호로 변환되고 이를 다시 문자로 기록한..

편지 지금 내가 써내려가는 하얀 공책처럼 편지지에 손 글씨로 써내려간 글은 편지를 받는 이(수신자)를 위한, 수신자만을 위한 말의 흔적이다. 수신자는 편지에 적힌 글씨를 통해 글을 쓴 이(발신자)를 떠올린다. 선명하지는 않겠지만, 수신자는 마지막으로 봤던 발신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편지를 읽는다. 수신자는 발신자가 그의 손으로 쓴 글 표면의 굴곡을 따라 발신자를 만난다. 편지는 단지 말의 흔적이기 보다는 발신자의 신체이자 곧 그 자체를 엿볼 수 있는 매개이다. 전보(1830년대) 전보는 발신자가 적은 메시지를 전기신호로 변환 후 편지 혹은 엽서와 같은 형태로 변환된다. 발신자가 신체를 통해 작성한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발신자가 편지 방식으로 작성된 메시지는 전기신호로 변환되고 이를 다시 문자로 기록한..

포토닷(2016년 4월호)에 실린 <변두리 사진 보고서: 우리는 이미지로 소통할 수 있을까>를 읽고

포토닷(2016년 4월호)에 실린 <변두리 사진 보고서: 우리는 이미지로 소통할 수 있을까>를 읽고

사진노트

물체는 물질로 이뤄진 사물이다. 사진은 사물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이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보존된 형상을 보고 사물을 인식한다. 물론 인식 대상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며 사진에 보존된 사물은 실재 사물이 아닌 그 사물의 형상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물질이라 한다면, 사물은 물론 사진도 물질이라 말할 수 있다. 물질은 물체를 이루는 존재이다. 고대엔 물체를 이루는 물질은 단 하나라는 설이 있었다. 이후 생각이 확장되어 물체를 이루는 물질은 하나가 아니라 네 개라는 설이 등장한다. 여기에 어떤 성질의 상호 작용에 의해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흔히 알고 있는 연금술의 시초다. 그러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연금술은 실패했고 물질의..

물체는 물질로 이뤄진 사물이다. 사진은 사물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이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보존된 형상을 보고 사물을 인식한다. 물론 인식 대상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며 사진에 보존된 사물은 실재 사물이 아닌 그 사물의 형상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물질이라 한다면, 사물은 물론 사진도 물질이라 말할 수 있다. 물질은 물체를 이루는 존재이다. 고대엔 물체를 이루는 물질은 단 하나라는 설이 있었다. 이후 생각이 확장되어 물체를 이루는 물질은 하나가 아니라 네 개라는 설이 등장한다. 여기에 어떤 성질의 상호 작용에 의해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흔히 알고 있는 연금술의 시초다. 그러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연금술은 실패했고 물질의..

아이 사진을 찍지 못하는 이유

아이 사진을 찍지 못하는 이유

사진노트

요즘, 어떤 이유를 적는 일이 부쩍 늘었다. 물론, 사진에 관한 것이다. ‘아’이유 시리즈가 될 판이다. 내가 사진에 관해 생각하는 이런저런 이유랄까? 아이 사진은 찍지 못하는 이유, 제목이 참 엄청나다. 뭔가 대단한 생각보다, 내게 왜 아이 사진을 찍지 못하는지 궁금해 글로 풀어 볼 요량에 적고 있다. 우연찮게(?) 카메라가 생기고 자연스레(?) 아이 사진을 찍는 것, 아마도 많은 이가 공감할 아빠 사진가 앞에 놓인 정해진 차례일 것이다. 물론, 아이 핑계로 카메라를 챙기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결과로써는 아이 사진을 찍는 것은 변함이 없다. 몇 년 그렇게 아이 사진을 찍었고, 앨범을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을 드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무렵에 아이 사진 찍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 아빠 사..

요즘, 어떤 이유를 적는 일이 부쩍 늘었다. 물론, 사진에 관한 것이다. ‘아’이유 시리즈가 될 판이다. 내가 사진에 관해 생각하는 이런저런 이유랄까? 아이 사진은 찍지 못하는 이유, 제목이 참 엄청나다. 뭔가 대단한 생각보다, 내게 왜 아이 사진을 찍지 못하는지 궁금해 글로 풀어 볼 요량에 적고 있다. 우연찮게(?) 카메라가 생기고 자연스레(?) 아이 사진을 찍는 것, 아마도 많은 이가 공감할 아빠 사진가 앞에 놓인 정해진 차례일 것이다. 물론, 아이 핑계로 카메라를 챙기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결과로써는 아이 사진을 찍는 것은 변함이 없다. 몇 년 그렇게 아이 사진을 찍었고, 앨범을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을 드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무렵에 아이 사진 찍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 아빠 사..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 이유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 이유

사진노트

내 모습이 주제를 넘어서고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왜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존 버거가 쓴 글을 읽고 더 단단해졌다. 선명한 사진을 좋아하고 즐겼던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본 그대로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건 내 기술이 부족한 탓일 수 있고, 평소에 쌓아놓은 교양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알고 지내는 한 사진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늘 푸념 섞인 말을 한다. 물론, 이 말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사진에 옮겨 놓는다는 말은 아니다. 뭔가를 본다는 것은 뭔가를 의식한다는 것이다. 결국,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함께 있을지라도, 그때 본 것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옮..

내 모습이 주제를 넘어서고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왜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존 버거가 쓴 글을 읽고 더 단단해졌다. 선명한 사진을 좋아하고 즐겼던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본 그대로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건 내 기술이 부족한 탓일 수 있고, 평소에 쌓아놓은 교양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알고 지내는 한 사진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늘 푸념 섞인 말을 한다. 물론, 이 말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사진에 옮겨 놓는다는 말은 아니다. 뭔가를 본다는 것은 뭔가를 의식한다는 것이다. 결국,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함께 있을지라도, 그때 본 것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옮..

말하기의 다른 방법: 읽었던 책을 다시 마주하는 날

말하기의 다른 방법: 읽었던 책을 다시 마주하는 날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처음 느낀 감동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는 드문데 흘러간 시간만큼 내가 달라진 게 이유일지 모른다. 지난 날,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나와 지금,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내가 같다면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그럼에도 다시 책을 꺼내들고 읽는다. 혹시나 처음 읽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내가 다시 책과 마주하는 동안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존 버거와 장 모르가 같이 작업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열심히 읽었다. ‘읽다’라는 말 그대로 그때는 정말 글만 읽었다. 어떤 사상을 알기 위해, 학문을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수집하고 비교했다. 그럼에도 길을 찾지 못해 여전히 헤매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처음 느낀 감동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는 드문데 흘러간 시간만큼 내가 달라진 게 이유일지 모른다. 지난 날,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나와 지금,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내가 같다면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그럼에도 다시 책을 꺼내들고 읽는다. 혹시나 처음 읽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내가 다시 책과 마주하는 동안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존 버거와 장 모르가 같이 작업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열심히 읽었다. ‘읽다’라는 말 그대로 그때는 정말 글만 읽었다. 어떤 사상을 알기 위해, 학문을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수집하고 비교했다. 그럼에도 길을 찾지 못해 여전히 헤매고..

사진의 이해,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

사진의 이해,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

보고 읽고 쓰기/감상

나는 이것을 보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라는 말은 이제 이것이 유심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는 나의 믿음은,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보여 주지 않기로 한 모든 것들에 비례한다라고 풀어써야 할 수도 있다.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5, 35쪽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은, 본다는 의지보다 보여준다는 의지이다. 존 버거는 사진을 꼭 예술작품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길 수 있다고 일러 준다.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예술 틀 바깥에 있다. 예술 틀 바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깥에는 소유할 수 없고, 결코 그럴 수 없는 진실(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이 존재한다. 예술은 늘 자세한 것을 두루 쓰..

나는 이것을 보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라는 말은 이제 이것이 유심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는 나의 믿음은,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보여 주지 않기로 한 모든 것들에 비례한다라고 풀어써야 할 수도 있다.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5, 35쪽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은, 본다는 의지보다 보여준다는 의지이다. 존 버거는 사진을 꼭 예술작품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길 수 있다고 일러 준다.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예술 틀 바깥에 있다. 예술 틀 바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깥에는 소유할 수 없고, 결코 그럴 수 없는 진실(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이 존재한다. 예술은 늘 자세한 것을 두루 쓰..

밝은 방: 17(단일 사진)

밝은 방: 17(단일 사진)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사진은 ‘현실’을 이중화시키지 않고 강조하여 변형시키고 흔들리게 만들 때(강조는 하나의 응집력이다) 단일성을 갖는다. 거기에는 이중성이나 간접성, 교란이 없다. 단일사진은, 구성의 ‘통일성’이 통속 수사학(그리고 특히 학교 교육의)의 제1규칙이므로, 결국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한 조언자는 아마튜어 사진가들에게 “주제는 쓸데없는 소도구들을 제거하고 단순해야만 한다. 그것은 통일성의 추구라는 이름을 갖는다”라고 말한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45쪽 이어서 바르트는 단일사진의 일례로 보도사진과 포르노사진을 듭니다. 그것들은 단 하나의 대상을 지시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오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에 자진 출두했습니다. 우리를 찌르는 것은 사진 속 그 때..

사진은 ‘현실’을 이중화시키지 않고 강조하여 변형시키고 흔들리게 만들 때(강조는 하나의 응집력이다) 단일성을 갖는다. 거기에는 이중성이나 간접성, 교란이 없다. 단일사진은, 구성의 ‘통일성’이 통속 수사학(그리고 특히 학교 교육의)의 제1규칙이므로, 결국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한 조언자는 아마튜어 사진가들에게 “주제는 쓸데없는 소도구들을 제거하고 단순해야만 한다. 그것은 통일성의 추구라는 이름을 갖는다”라고 말한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45쪽 이어서 바르트는 단일사진의 일례로 보도사진과 포르노사진을 듭니다. 그것들은 단 하나의 대상을 지시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오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에 자진 출두했습니다. 우리를 찌르는 것은 사진 속 그 때..

자동화의 끝은 어디인가?

자동화의 끝은 어디인가?

사진노트

육체를 대신하는 자동화 어머님은 가끔 제 어린 시절 얘기를 해주십니다. 그 가운데 자주 들었던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전철을 탔을 때 스스로 열리는 문이 신기해 “와, 자동문이네!”라며 주변 사람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를 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미닫이문도 있던 시절이니까요. 자동문의 등장으로 현대인은 손으로 문을 열지 않습니다. 문 앞의 센서가 문을 열지 말지를 판단하니 손 쓸 필요가 없게 되었죠. 문 열기 힘든 사람에게는 반가운 일입니다. 잔뜩 짐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알아서 문이 열리니 얼마나 편리한지요. 그러나 자동화가 비단 좋은 일만 있을까요? 한 예로 노인이 자동문에 부딪히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센서가 있는 자동문이 아니라 문 열기 버..

육체를 대신하는 자동화 어머님은 가끔 제 어린 시절 얘기를 해주십니다. 그 가운데 자주 들었던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전철을 탔을 때 스스로 열리는 문이 신기해 “와, 자동문이네!”라며 주변 사람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를 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미닫이문도 있던 시절이니까요. 자동문의 등장으로 현대인은 손으로 문을 열지 않습니다. 문 앞의 센서가 문을 열지 말지를 판단하니 손 쓸 필요가 없게 되었죠. 문 열기 힘든 사람에게는 반가운 일입니다. 잔뜩 짐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알아서 문이 열리니 얼마나 편리한지요. 그러나 자동화가 비단 좋은 일만 있을까요? 한 예로 노인이 자동문에 부딪히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센서가 있는 자동문이 아니라 문 열기 버..

밝은 방: 16(욕망을 불어넣기)

밝은 방: 16(욕망을 불어넣기)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나에게 있어서 풍경사진은 (도시건 시골이건)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이 거주의 욕망을 잘 관찰해 보면, 몽환적인 것도(나는 기상천외의 장소를 꿈꾸지는 않는다.) 경험적인 것도 아니다. (나는 부동산업자의 광고를 보고 집을 사려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환상적이며 나를 앞으로, 유토피아적인 시간 속으로 데려가는 듯한, 혹은 한없이 뒤로 데려가는 듯이 보이는 일종의 투시력(yoyance)에 속한다. 그러나 내 자신도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딘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여행에의 초대〉와 〈전생(前生)〉에서 노래한 이중의 움직임이다. 이 열애의 감정이 솟는 풍경 앞에서 마치 나는 그곳에 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혹은 가게 될 것을 확신하게 ..

나에게 있어서 풍경사진은 (도시건 시골이건)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이 거주의 욕망을 잘 관찰해 보면, 몽환적인 것도(나는 기상천외의 장소를 꿈꾸지는 않는다.) 경험적인 것도 아니다. (나는 부동산업자의 광고를 보고 집을 사려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환상적이며 나를 앞으로, 유토피아적인 시간 속으로 데려가는 듯한, 혹은 한없이 뒤로 데려가는 듯이 보이는 일종의 투시력(yoyance)에 속한다. 그러나 내 자신도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딘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여행에의 초대〉와 〈전생(前生)〉에서 노래한 이중의 움직임이다. 이 열애의 감정이 솟는 풍경 앞에서 마치 나는 그곳에 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혹은 가게 될 것을 확신하게 ..

밝은 방: 15(의미하기)

밝은 방: 15(의미하기)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사회는 순수한 의미를 경계하는 것 같다. 사회는 의미를 원하는 동시에 이것을 덜 날카롭게 만들 수 있는, (인공두뇌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어떤 잡음에 둘러싸이기를 바란다. 또한 사회는 그 의미(효과가 아니라)가 너무 인상적인 사진은 곧 외면한다. 사람들은 사진을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미학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 그 사진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문자와는 다른―생각하게 하고 암시하였다. 결국 사진은, 두려움을 주거나 찡그리거나 비난할 때가 아니라 생각에 잠길 때, 파괴적이란 특성을 갖는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41-42쪽 이번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문명화된 잡지와 사실주의, 시간을 되돌리는 광기를 말이다. 다른 얘기일 수..

사회는 순수한 의미를 경계하는 것 같다. 사회는 의미를 원하는 동시에 이것을 덜 날카롭게 만들 수 있는, (인공두뇌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어떤 잡음에 둘러싸이기를 바란다. 또한 사회는 그 의미(효과가 아니라)가 너무 인상적인 사진은 곧 외면한다. 사람들은 사진을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미학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 그 사진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문자와는 다른―생각하게 하고 암시하였다. 결국 사진은, 두려움을 주거나 찡그리거나 비난할 때가 아니라 생각에 잠길 때, 파괴적이란 특성을 갖는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41-42쪽 이번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문명화된 잡지와 사실주의, 시간을 되돌리는 광기를 말이다. 다른 얘기일 수..

밝은 방: 13(그리기)

밝은 방: 13(그리기)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나의 연구의 현 단계에서는 사진이 아무리 사실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그림과 구별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화주의’는 사진이 자신에 관해 생각하는 하나의 과정법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진이 예술에 접근하는 것은, 회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연극을 통해서이다.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36쪽 사진은 예술성을 증명하기 위해 ‘회화주의’ 사진을 추구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장의 소제목을 (사진을) ‘그리다’로 명명한 것 같다. 무엇보다 사진은 생생함을 추구한다. 마치 대상이 구경꾼 앞에 살아있다고 증명하려는 것처럼. 이 생생함의 배후에는 바로 죽음이 있다고 바르트는 말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데카르트의 잠수인형..

나의 연구의 현 단계에서는 사진이 아무리 사실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그림과 구별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화주의’는 사진이 자신에 관해 생각하는 하나의 과정법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진이 예술에 접근하는 것은, 회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연극을 통해서이다.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36쪽 사진은 예술성을 증명하기 위해 ‘회화주의’ 사진을 추구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장의 소제목을 (사진을) ‘그리다’로 명명한 것 같다. 무엇보다 사진은 생생함을 추구한다. 마치 대상이 구경꾼 앞에 살아있다고 증명하려는 것처럼. 이 생생함의 배후에는 바로 죽음이 있다고 바르트는 말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데카르트의 잠수인형..

밝은 방: 12(정보제공)

밝은 방: 12(정보제공)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사진은 순수한 우연성이며, 오직 우연일 뿐이므로 (사진은 언제나 표현된 그 무엇이다)― 한 낱말의 돌연한 작용에 의해 하나의 문장을 묘사로부터 명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텍스트와는 달리 ― 민속학적 지식의 재료가 되는 ‘세부들’을 단번에 보여준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34-35쪽 여기서 바르트는 사진과 사물의 관계는 우연하게 맺어진다고 말한다. 즉 사진의 특성 가운데 우연성은 사물의 다른 의미를 뜻하는 것이 아닌 그 사물을 지시함을 말한다. 언어는 또 다른 언어와의 차이에 통해 유지되지만, 사진은 그렇지 않다. 사진은 지시하는 사물의 차이를 통해 유지된다고 바르트는 말한다. 2016-09-27 사진의 의미론은 화용론이며 다른 말로 저자의 죽음이라 한다. ..

사진은 순수한 우연성이며, 오직 우연일 뿐이므로 (사진은 언제나 표현된 그 무엇이다)― 한 낱말의 돌연한 작용에 의해 하나의 문장을 묘사로부터 명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텍스트와는 달리 ― 민속학적 지식의 재료가 되는 ‘세부들’을 단번에 보여준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34-35쪽 여기서 바르트는 사진과 사물의 관계는 우연하게 맺어진다고 말한다. 즉 사진의 특성 가운데 우연성은 사물의 다른 의미를 뜻하는 것이 아닌 그 사물을 지시함을 말한다. 언어는 또 다른 언어와의 차이에 통해 유지되지만, 사진은 그렇지 않다. 사진은 지시하는 사물의 차이를 통해 유지된다고 바르트는 말한다. 2016-09-27 사진의 의미론은 화용론이며 다른 말로 저자의 죽음이라 한다. ..

밝은 방: 11(스투디움)

밝은 방: 11(스투디움)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이번 장의 소제목은 ‘스투디움’이지만, ‘신화’가 더 적합하다. 바르트는 『신화론』(1957)에서 과학의 객관성과 작가의 주관성을 따로 나누지 않고 둘을 화해시키려 했다. 신화는 과학의 객관성을 통해 기표(청각 영상)와 기의(개념)를 분석해 기호를 추출한다. 다시 그 기호를 기표로 삼고 기의를 덧붙여 메타화한다. 이때 의미작용은 주관성이 개입된다. 이렇게 해서 신화가 탄생한다. 이 신화들은 사진에 어떤 기능들을 부여함으로써(신화는 그것을 이용한다), 사진과 신화를 화해시키려는 (그것은 필요한 일일까? 그렇다. 왜냐하면 사진은 위험한 것이므로) 의도를 가지는데, 이 기능들은 사진가에게는 알리바이가 된다. 정보제공·표현·포착·의미부여·욕망의 자극 등이 이 기능들이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이번 장의 소제목은 ‘스투디움’이지만, ‘신화’가 더 적합하다. 바르트는 『신화론』(1957)에서 과학의 객관성과 작가의 주관성을 따로 나누지 않고 둘을 화해시키려 했다. 신화는 과학의 객관성을 통해 기표(청각 영상)와 기의(개념)를 분석해 기호를 추출한다. 다시 그 기호를 기표로 삼고 기의를 덧붙여 메타화한다. 이때 의미작용은 주관성이 개입된다. 이렇게 해서 신화가 탄생한다. 이 신화들은 사진에 어떤 기능들을 부여함으로써(신화는 그것을 이용한다), 사진과 신화를 화해시키려는 (그것은 필요한 일일까? 그렇다. 왜냐하면 사진은 위험한 것이므로) 의도를 가지는데, 이 기능들은 사진가에게는 알리바이가 된다. 정보제공·표현·포착·의미부여·욕망의 자극 등이 이 기능들이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