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태그의 글 목록 12개

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

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

사진노트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존재했음’이라 확인했다면, 존 버거는 좀 더 사진의 모호성을 파고들었다. 버거는 사진의 모호성은 “작품 ‘이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이 말만큼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다. 모호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하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따로따로인 것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로 모은 것은 따로따로인 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인지, 진실인지에 따라 투명성을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각각 사진이 모호하면 하나로 모은 것도 결국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닌가! 늘 여기서 오락가락하는 나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고 때문이라 진단하지만 진단만 있을 뿐 해결책이 없다. 이런 것은 어떨..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존재했음’이라 확인했다면, 존 버거는 좀 더 사진의 모호성을 파고들었다. 버거는 사진의 모호성은 “작품 ‘이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이 말만큼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다. 모호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하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따로따로인 것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로 모은 것은 따로따로인 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인지, 진실인지에 따라 투명성을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각각 사진이 모호하면 하나로 모은 것도 결국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닌가! 늘 여기서 오락가락하는 나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고 때문이라 진단하지만 진단만 있을 뿐 해결책이 없다. 이런 것은 어떨..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 이유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 이유

사진노트

내 모습이 주제를 넘어서고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왜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존 버거가 쓴 글을 읽고 더 단단해졌다. 선명한 사진을 좋아하고 즐겼던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본 그대로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건 내 기술이 부족한 탓일 수 있고, 평소에 쌓아놓은 교양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알고 지내는 한 사진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늘 푸념 섞인 말을 한다. 물론, 이 말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사진에 옮겨 놓는다는 말은 아니다. 뭔가를 본다는 것은 뭔가를 의식한다는 것이다. 결국,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함께 있을지라도, 그때 본 것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옮..

내 모습이 주제를 넘어서고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왜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존 버거가 쓴 글을 읽고 더 단단해졌다. 선명한 사진을 좋아하고 즐겼던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본 그대로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건 내 기술이 부족한 탓일 수 있고, 평소에 쌓아놓은 교양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알고 지내는 한 사진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늘 푸념 섞인 말을 한다. 물론, 이 말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사진에 옮겨 놓는다는 말은 아니다. 뭔가를 본다는 것은 뭔가를 의식한다는 것이다. 결국,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함께 있을지라도, 그때 본 것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옮..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이유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이유

사진노트

한번은, 구경꾼과 촬영자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양쪽 입장에서 사진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 의해 사진 찍히는 시대에 꽤 괜찮은 물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출판을 준비하면서 뭔가 어긋남을 알게 되고 그렇게 프로젝트는 멈췄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 사진가 장 모르의 말을 듣고 보니 참 잘한 일이구나 싶다. 모르가 한 말은 이것이다. “나는 문득 내가 양쪽의 입장 모두가 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이런 가정은 늘 위험하지만) 내가 출판을 했다면, 가슴 한 구석에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살게 되었을 것이다. 글이야 언제라도 지우고 다시 쓰면 되지만 책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더구나 난 이제 촬영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점점 구경꾼이 되어 간다.그러나 다소 희망은 있다. ..

한번은, 구경꾼과 촬영자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양쪽 입장에서 사진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 의해 사진 찍히는 시대에 꽤 괜찮은 물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출판을 준비하면서 뭔가 어긋남을 알게 되고 그렇게 프로젝트는 멈췄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 사진가 장 모르의 말을 듣고 보니 참 잘한 일이구나 싶다. 모르가 한 말은 이것이다. “나는 문득 내가 양쪽의 입장 모두가 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이런 가정은 늘 위험하지만) 내가 출판을 했다면, 가슴 한 구석에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살게 되었을 것이다. 글이야 언제라도 지우고 다시 쓰면 되지만 책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더구나 난 이제 촬영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점점 구경꾼이 되어 간다.그러나 다소 희망은 있다. ..

소를 키우는 마르셀이 들려주는 사진의 의미

소를 키우는 마르셀이 들려주는 사진의 의미

사진노트

두 친구(존 버거와 장 모르)는 사진 작업을 위해 산악지방에 살고 있는 농부와 생활을 한다. 마르셀은 그들과 함께했던 농부 가운데 한 명이다. 마르셀은 소 50마리를 키운다. 이틀 동안 사진가 모르는 마르셀과 생활하며 꽤 친해진 듯하다. 서로 마음을 열면 진실한 대화가 오고가곤 한다. 모르가 현상한 소 사진을 본 마르셀은 그런 것은 찍을 게 못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찍은 사진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 퉁명스럽게 말을 덧붙인다. 사람 얼굴을 찍을 거면 이렇게 쓱 잘라 찍지 말고 얼굴 전체 그리고 어깨까지 보이도록 찍어야 한다고 훈수를 둔다. 두 사진을 보면, 특히 눈 아래까지 내려온 짙은 눈썹은 묘하게 닮았다. 마치 두 사람이 만나 살다보면 성격뿐 아니라 외모도 닮는 것처럼. 얼굴 전체를 덮은 소..

두 친구(존 버거와 장 모르)는 사진 작업을 위해 산악지방에 살고 있는 농부와 생활을 한다. 마르셀은 그들과 함께했던 농부 가운데 한 명이다. 마르셀은 소 50마리를 키운다. 이틀 동안 사진가 모르는 마르셀과 생활하며 꽤 친해진 듯하다. 서로 마음을 열면 진실한 대화가 오고가곤 한다. 모르가 현상한 소 사진을 본 마르셀은 그런 것은 찍을 게 못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찍은 사진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 퉁명스럽게 말을 덧붙인다. 사람 얼굴을 찍을 거면 이렇게 쓱 잘라 찍지 말고 얼굴 전체 그리고 어깨까지 보이도록 찍어야 한다고 훈수를 둔다. 두 사진을 보면, 특히 눈 아래까지 내려온 짙은 눈썹은 묘하게 닮았다. 마치 두 사람이 만나 살다보면 성격뿐 아니라 외모도 닮는 것처럼. 얼굴 전체를 덮은 소..

말하기의 다른 방법: 읽었던 책을 다시 마주하는 날

말하기의 다른 방법: 읽었던 책을 다시 마주하는 날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처음 느낀 감동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는 드문데 흘러간 시간만큼 내가 달라진 게 이유일지 모른다. 지난 날,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나와 지금,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내가 같다면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그럼에도 다시 책을 꺼내들고 읽는다. 혹시나 처음 읽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내가 다시 책과 마주하는 동안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존 버거와 장 모르가 같이 작업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열심히 읽었다. ‘읽다’라는 말 그대로 그때는 정말 글만 읽었다. 어떤 사상을 알기 위해, 학문을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수집하고 비교했다. 그럼에도 길을 찾지 못해 여전히 헤매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처음 느낀 감동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는 드문데 흘러간 시간만큼 내가 달라진 게 이유일지 모른다. 지난 날,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나와 지금,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내가 같다면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그럼에도 다시 책을 꺼내들고 읽는다. 혹시나 처음 읽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내가 다시 책과 마주하는 동안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존 버거와 장 모르가 같이 작업한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열심히 읽었다. ‘읽다’라는 말 그대로 그때는 정말 글만 읽었다. 어떤 사상을 알기 위해, 학문을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수집하고 비교했다. 그럼에도 길을 찾지 못해 여전히 헤매고..

사진의 이해,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

사진의 이해,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

보고 읽고 쓰기/감상

나는 이것을 보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라는 말은 이제 이것이 유심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는 나의 믿음은,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보여 주지 않기로 한 모든 것들에 비례한다라고 풀어써야 할 수도 있다.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5, 35쪽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은, 본다는 의지보다 보여준다는 의지이다. 존 버거는 사진을 꼭 예술작품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길 수 있다고 일러 준다.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예술 틀 바깥에 있다. 예술 틀 바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깥에는 소유할 수 없고, 결코 그럴 수 없는 진실(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이 존재한다. 예술은 늘 자세한 것을 두루 쓰..

나는 이것을 보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라는 말은 이제 이것이 유심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는 나의 믿음은,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보여 주지 않기로 한 모든 것들에 비례한다라고 풀어써야 할 수도 있다.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5, 35쪽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은, 본다는 의지보다 보여준다는 의지이다. 존 버거는 사진을 꼭 예술작품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길 수 있다고 일러 준다. 그가 생각하는 사진은 예술 틀 바깥에 있다. 예술 틀 바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깥에는 소유할 수 없고, 결코 그럴 수 없는 진실(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이 존재한다. 예술은 늘 자세한 것을 두루 쓰..

빔 벤더스: 『한번은,』, 사진의 개인 혹은 대중적 사용

빔 벤더스: 『한번은,』, 사진의 개인 혹은 대중적 사용

보고 읽고 쓰기/감상

1 사진은 모호하다. 글은 모호함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은 글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에 설명을 덧붙이는 것만큼 위태로운 것은 없다. 구체적으로 ‘사진을 위한 설명’이 아닌 ‘설명을 위한 사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읽힌 사진은 이미 정해진 시선으로 바라볼 일만 남게 된다. 고정된 ‘사진 읽기’는 대상의 상(像) 혹은 지시만을 남긴다. 존 버거는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2)에서 고정된 ‘사진 읽기’를 역사와 동치 시킨다. 즉, 결정된 관념 혹은 영원한 의미로서의 ‘사진 읽기’를 거부하고 저항해야 함을 언급했다. 저항의 하나로 존 버거와 장 모르가 시도한 것은 짧은 서문과 함께 일련의 사진들을 나열한 「만일 매 순간에…」이다. 그들은 이런 시도가 핵심적인 언어적 표현이나 줄거리..

1 사진은 모호하다. 글은 모호함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은 글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에 설명을 덧붙이는 것만큼 위태로운 것은 없다. 구체적으로 ‘사진을 위한 설명’이 아닌 ‘설명을 위한 사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읽힌 사진은 이미 정해진 시선으로 바라볼 일만 남게 된다. 고정된 ‘사진 읽기’는 대상의 상(像) 혹은 지시만을 남긴다. 존 버거는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2)에서 고정된 ‘사진 읽기’를 역사와 동치 시킨다. 즉, 결정된 관념 혹은 영원한 의미로서의 ‘사진 읽기’를 거부하고 저항해야 함을 언급했다. 저항의 하나로 존 버거와 장 모르가 시도한 것은 짧은 서문과 함께 일련의 사진들을 나열한 「만일 매 순간에…」이다. 그들은 이런 시도가 핵심적인 언어적 표현이나 줄거리..

존 버거와 장 모르: 『말하기의 다른 방법』, 반(半)언어로서의 사진의 의미

존 버거와 장 모르: 『말하기의 다른 방법』, 반(半)언어로서의 사진의 의미

보고 읽고 쓰기/감상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사진에 관한 것 존 버거와 장 모르의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2) 서문에는 이 책이 어떤 의미로 제작되었는지에 대해 잘 말하고 있다.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산악지방에 사는 농부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집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는 사진에 관한 것이다. 즉, 오늘 날에 만연한 사진이라는 것의 의미와 활용에 대해 답을 찾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목적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첫 번째 목적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총 5부 중 2부의 에세이는 존 버거의 다른 책, 『보는 방법』(1972)의 연장선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두 번째 목적에 부합되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먼저 장 모르..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사진에 관한 것 존 버거와 장 모르의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2) 서문에는 이 책이 어떤 의미로 제작되었는지에 대해 잘 말하고 있다.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산악지방에 사는 농부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집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는 사진에 관한 것이다. 즉, 오늘 날에 만연한 사진이라는 것의 의미와 활용에 대해 답을 찾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목적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첫 번째 목적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총 5부 중 2부의 에세이는 존 버거의 다른 책, 『보는 방법』(1972)의 연장선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두 번째 목적에 부합되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먼저 장 모르..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비틀린 시선.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비틀린 시선.

보고 읽고 쓰기/감상

모든 그림의 독자성은 그림이 걸려 있던 장소가 지닌 독자성의 한 부분이었다. 때로는 그림을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을 두 장소에서 동시에 볼 수는 없었다. 카메라가 어떤 그림을 복제하면, 그 이미지의 독자성은 파괴된다. 그 결과 그 이미지의 의미는 변화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의미가 여러 가지로 늘어나고 많은 의미들로 조각조각 나누어진다.〔24, 25〕 존 버거가 첫 장 마지막 부분에 언급 하였듯이 위 생각은 발터 벤야민의 글, 《기계 복제 시대의 미술작품》에서 빌려 왔다. 기계 복제를 통해 쉽게 볼 수 없었던 원본과 유사한 복제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이런 의미에서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비록, 많은 구경꾼이 새로운 경험에 황홀해했지만, 그 뒤편에는 또 다른 의미가 내포되었던..

모든 그림의 독자성은 그림이 걸려 있던 장소가 지닌 독자성의 한 부분이었다. 때로는 그림을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을 두 장소에서 동시에 볼 수는 없었다. 카메라가 어떤 그림을 복제하면, 그 이미지의 독자성은 파괴된다. 그 결과 그 이미지의 의미는 변화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의미가 여러 가지로 늘어나고 많은 의미들로 조각조각 나누어진다.〔24, 25〕 존 버거가 첫 장 마지막 부분에 언급 하였듯이 위 생각은 발터 벤야민의 글, 《기계 복제 시대의 미술작품》에서 빌려 왔다. 기계 복제를 통해 쉽게 볼 수 없었던 원본과 유사한 복제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이런 의미에서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비록, 많은 구경꾼이 새로운 경험에 황홀해했지만, 그 뒤편에는 또 다른 의미가 내포되었던..

존 버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모호한 눈물

존 버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모호한 눈물

보고 읽고 쓰기/감상

존 버거의 산문집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물질문명 사회에서 숨 가쁘게 살아오며 잃어버린 진정성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다. 과거에 겪었던 고통과 슬픔을 잊은 채 행복과 기쁨을 찾고자 했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는 울림이다. 고통 없이 행복이 있을 수 있는지. 슬픔 없이 기쁨이 있을 수 있는지. 사진을 본다는 것은 생생한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다. 이거라고 말하면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면 그보다 더한 증명은 없을 것이다. 사진의 직관적인 인식, 즉 명증성의 힘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 유일한 소개된 사진은 그렇지만은 않다. 사진 안에 두 사람은 흐릿하고 모호했다. 여러 달이 지난 후 마리사 카미노는 자두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거기 우리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

존 버거의 산문집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물질문명 사회에서 숨 가쁘게 살아오며 잃어버린 진정성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다. 과거에 겪었던 고통과 슬픔을 잊은 채 행복과 기쁨을 찾고자 했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는 울림이다. 고통 없이 행복이 있을 수 있는지. 슬픔 없이 기쁨이 있을 수 있는지. 사진을 본다는 것은 생생한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다. 이거라고 말하면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면 그보다 더한 증명은 없을 것이다. 사진의 직관적인 인식, 즉 명증성의 힘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 유일한 소개된 사진은 그렇지만은 않다. 사진 안에 두 사람은 흐릿하고 모호했다. 여러 달이 지난 후 마리사 카미노는 자두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거기 우리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

닮음이란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

닮음이란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

사진노트

존 버거의 산문집은 글로 사진을 썼다는 것이 매력이다. 관련해서는 책을 다 읽고 주절주절 이야기할 참이다. 입이 간지러운 거지. 손이 멈추지 않는 거지.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상상이 되는 그런 글. 이색적인 만남이다. 「턱을 괴고 있는 젊은 여자」라는 표제가 있었다. 표제만으로 어떤 사진일지 쉽게 상상이 간다. "대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인물화의 조건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닮을 수도 닮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것은 신비로 남는다. 이를테면 사진의 경우 '닮음'이란 없다. 사진에서 그건 질문조차 되지 않는다. 닮음이란 생김새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같이 두 방향에서의 겨냥이 그림에 포착된 것이리라."존 버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김우룡 옮김..

존 버거의 산문집은 글로 사진을 썼다는 것이 매력이다. 관련해서는 책을 다 읽고 주절주절 이야기할 참이다. 입이 간지러운 거지. 손이 멈추지 않는 거지.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상상이 되는 그런 글. 이색적인 만남이다. 「턱을 괴고 있는 젊은 여자」라는 표제가 있었다. 표제만으로 어떤 사진일지 쉽게 상상이 간다. "대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인물화의 조건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닮을 수도 닮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것은 신비로 남는다. 이를테면 사진의 경우 '닮음'이란 없다. 사진에서 그건 질문조차 되지 않는다. 닮음이란 생김새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같이 두 방향에서의 겨냥이 그림에 포착된 것이리라."존 버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김우룡 옮김..

자두나무의 눈물

자두나무의 눈물

사진노트

문장에도 습관이 있다.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것을 안 것은 낡은 책을 뒤척였을 때이다. 흩날려 적힌 글자가 있다. 빨간색이다. 책을 읽으며 짧은 감상을 적어 놓았다. 천천히 글을 따라 눈을 움직인다. 소름이 돋는다. 마치 오늘 쓴 글과도 같았다.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존 버거는 그를 찾아온 마리사 카미노와 함께 자두나무 옆에 서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노출이 2~3분은 필요한 때였다. 둘은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 자두나무도 흔들렸다. 바람 탓이다. 나는 자두나무일까? 그때도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그래서 눈물이 흘렀나 보다. "그녀의 조심스런 손가락이 그 흰 반창고 조각을 젖혔다. 작은 구멍이 드러났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 우리 둘은 카메라를 마주하고 거기 서 있..

문장에도 습관이 있다.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것을 안 것은 낡은 책을 뒤척였을 때이다. 흩날려 적힌 글자가 있다. 빨간색이다. 책을 읽으며 짧은 감상을 적어 놓았다. 천천히 글을 따라 눈을 움직인다. 소름이 돋는다. 마치 오늘 쓴 글과도 같았다.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존 버거는 그를 찾아온 마리사 카미노와 함께 자두나무 옆에 서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노출이 2~3분은 필요한 때였다. 둘은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 자두나무도 흔들렸다. 바람 탓이다. 나는 자두나무일까? 그때도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그래서 눈물이 흘렀나 보다. "그녀의 조심스런 손가락이 그 흰 반창고 조각을 젖혔다. 작은 구멍이 드러났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 우리 둘은 카메라를 마주하고 거기 서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