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비수다'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484개

재미있게 보고 읽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

재미있게 보고 읽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

보고 읽고 쓰기/영화

디지털 영상, 기술적 영상은 점점 더 빠른 전개가 요구되고 장면 전환이 빠르게 진행된다. 〈구르미 그린 달빛〉만 해도 조하연의 세자빈 간택 과정, 김윤성이 홍라온을 궁궐에서 나오게 도와주는 장면 그리고 이영과 홍라온의 극적인 만남 등 너무 비개연적인 상황이 많다. 그럼에도 구구절절 그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지난 회 그리고 다음 회에 이어 소개하는 방식으로 개연성을 지키고 긴장감을 유지한다. 자칫 지속되는 긴장감 탓에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는데 정도령과 공주의 러브스토리가 팽팽한 긴장감을 상쇄시켜 피로를 해소한다. 왕세자와 홍경래 여식의 만남. 둘은 생이별 후 영의정의 모략의 일환으로 재회한다. 아마도 어떻게 재회하게 된 것인지는..

디지털 영상, 기술적 영상은 점점 더 빠른 전개가 요구되고 장면 전환이 빠르게 진행된다. 〈구르미 그린 달빛〉만 해도 조하연의 세자빈 간택 과정, 김윤성이 홍라온을 궁궐에서 나오게 도와주는 장면 그리고 이영과 홍라온의 극적인 만남 등 너무 비개연적인 상황이 많다. 그럼에도 구구절절 그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지난 회 그리고 다음 회에 이어 소개하는 방식으로 개연성을 지키고 긴장감을 유지한다. 자칫 지속되는 긴장감 탓에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는데 정도령과 공주의 러브스토리가 팽팽한 긴장감을 상쇄시켜 피로를 해소한다. 왕세자와 홍경래 여식의 만남. 둘은 생이별 후 영의정의 모략의 일환으로 재회한다. 아마도 어떻게 재회하게 된 것인지는..

'이미지와 텍스트'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다시 읽으며

'이미지와 텍스트'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다시 읽으며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이미지에 대한 짧은 생각 후 텍스트를 살피고 있다. 텍스트를 살피려면 적당한 입문서를 찾아야 하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난해하지만 그동안 읽고 있던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통해 옮긴이가 말하는 의사소통보다는 생산성을 재현보다는 상징을 언표보다는 언술행위를 살펴보려 한다. 이는 바르트의 생각이기 보다는 옮긴이의 생각이며 시대의 흐름이자 트래픽이다. 아직은 온전히 내 생각을 말하기 힘들기 때문에 옮긴이의 생각을 토대로 바르트의 텍스트론을 살펴보려 한다. 텍스트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시니피앙의 다각적이고도 물질적·감각적인 성격에 의해 무한한 의미생산이 가능한 열린 공간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언어학이 언표·의사소통·재현의 산물이라면(크리스테바의 용어로는 현상텍스트), 텍스트는 언술행위·상징화·생산성..

이미지에 대한 짧은 생각 후 텍스트를 살피고 있다. 텍스트를 살피려면 적당한 입문서를 찾아야 하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난해하지만 그동안 읽고 있던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통해 옮긴이가 말하는 의사소통보다는 생산성을 재현보다는 상징을 언표보다는 언술행위를 살펴보려 한다. 이는 바르트의 생각이기 보다는 옮긴이의 생각이며 시대의 흐름이자 트래픽이다. 아직은 온전히 내 생각을 말하기 힘들기 때문에 옮긴이의 생각을 토대로 바르트의 텍스트론을 살펴보려 한다. 텍스트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시니피앙의 다각적이고도 물질적·감각적인 성격에 의해 무한한 의미생산이 가능한 열린 공간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언어학이 언표·의사소통·재현의 산물이라면(크리스테바의 용어로는 현상텍스트), 텍스트는 언술행위·상징화·생산성..

'이미지와 텍스트' 기억 저장소로서의 디지털 이미지

'이미지와 텍스트' 기억 저장소로서의 디지털 이미지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는 대화라 할 수 있다. 나와 너 혹은 나와 특정집단에 속한 우리와의 대화이다. 연서가 그렇고 가족에게 보내는 안부 인사가 그렇다.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폐쇄적인 특징이 있는데 메시지는 허락된 이(들)에게만 전달돼야하며 읽을 수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 일기는 나만 볼 수 있다는 무언의 계약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 일기를 볼 때 뭔가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무언의 계약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가 폐쇄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였다면,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는 열린 공간에서 담론을 이끌어내는 대화를 구성한다. 물론, 디지털 공간에도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와 같은 폐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는 대화라 할 수 있다. 나와 너 혹은 나와 특정집단에 속한 우리와의 대화이다. 연서가 그렇고 가족에게 보내는 안부 인사가 그렇다.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폐쇄적인 특징이 있는데 메시지는 허락된 이(들)에게만 전달돼야하며 읽을 수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 일기는 나만 볼 수 있다는 무언의 계약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 일기를 볼 때 뭔가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무언의 계약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가 폐쇄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였다면,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는 열린 공간에서 담론을 이끌어내는 대화를 구성한다. 물론, 디지털 공간에도 편지, 전보 그리고 엽서와 같은 폐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이미지와 텍스트' 기술영상시대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이미지와 텍스트' 기술영상시대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아직 확신은 없지만, 토론에서 제기된 ‘자유’의 의미를 살펴본다. ‘자유’란 무엇인가. 어떤 ‘자유’를 말하려고 하는가. 바로 기술영상시대에서 빌렘 플루서가 말한 ‘자유’에 대한 의미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을 ‘노예’로 인식한다. 여기서 ‘노예’는 억압된 대상이며 자유롭지 않은 대상을 말한다. 스마트폰의 좋지 않은 면도 있는 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알리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글이나 촬영한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늘 사용하는 기기이다. 물론, 누군가 겪은 일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기기이기도 하다.글이나 그림을 그리는 대표적인 도구는 펜일 것이다. 펜을 통해 내가 겪은 일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려면 우리는 일단 그것을 추상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겪은 일을 시시콜콜 전달하기도 힘들뿐만..

아직 확신은 없지만, 토론에서 제기된 ‘자유’의 의미를 살펴본다. ‘자유’란 무엇인가. 어떤 ‘자유’를 말하려고 하는가. 바로 기술영상시대에서 빌렘 플루서가 말한 ‘자유’에 대한 의미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을 ‘노예’로 인식한다. 여기서 ‘노예’는 억압된 대상이며 자유롭지 않은 대상을 말한다. 스마트폰의 좋지 않은 면도 있는 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알리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글이나 촬영한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늘 사용하는 기기이다. 물론, 누군가 겪은 일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기기이기도 하다.글이나 그림을 그리는 대표적인 도구는 펜일 것이다. 펜을 통해 내가 겪은 일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려면 우리는 일단 그것을 추상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겪은 일을 시시콜콜 전달하기도 힘들뿐만..

'이미지와 텍스트' 현실에서 만난 램프의 요정 지니

'이미지와 텍스트' 현실에서 만난 램프의 요정 지니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양면의 물성이 있는 엽서는 디지털 코드로 변환되어 단면의 물성을 띈다. 물론, 그 물성은 스크린(모니터)을 매개로 한다. 막연히 존재할 것 같으나 볼 수 없는 디지털 코드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시화되고 스크린을 통해 물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변화로 수신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일까? 손으로 종이의 표면을 매만지는 행위는 발신자를 어루만지는 애무와 다를 바 없다. 만약 발신자가 보낸 엽서가 향기가 나는 종이라면 그 향기는 곧 발신자에게서 맡을 수 있는 향기가 된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손으로 램프를 어루만지면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는 마법과 같다. 그러나 디지털 코드가 가시화된 엽서(스크린)를 문지른다고 해서 램프의 요점 지니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왜 그럴까? 이미 마법은 실현된 상태..

양면의 물성이 있는 엽서는 디지털 코드로 변환되어 단면의 물성을 띈다. 물론, 그 물성은 스크린(모니터)을 매개로 한다. 막연히 존재할 것 같으나 볼 수 없는 디지털 코드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시화되고 스크린을 통해 물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변화로 수신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일까? 손으로 종이의 표면을 매만지는 행위는 발신자를 어루만지는 애무와 다를 바 없다. 만약 발신자가 보낸 엽서가 향기가 나는 종이라면 그 향기는 곧 발신자에게서 맡을 수 있는 향기가 된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손으로 램프를 어루만지면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는 마법과 같다. 그러나 디지털 코드가 가시화된 엽서(스크린)를 문지른다고 해서 램프의 요점 지니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왜 그럴까? 이미 마법은 실현된 상태..

'이미지와 텍스트' 단면으로 구성된 그림과 텍스트

'이미지와 텍스트' 단면으로 구성된 그림과 텍스트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마치 전보에 적힌 글이 발신자의 신체를 지시하지 않듯, 엽서에서의 그림은 요즘 디지털이미지를 인식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즉 그것을 그렸거나 혹은 촬영한 이를 떠올리기보다는 하나의 메시지로 인식한다. 장소를 나타내는 그림, 크리스마스와 같이 특정한 날을 기념하는 그림 등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을 지시한다.흥미로운 것은 엽서에 있는 그림이나 사진의 영역, 내용이 들어갈 텍스트의 영역이 엄격하게 지켜졌다는 점이다. 오직 그 영역을 정당하게 침범할 수 있었던 것은 (우체국) 직인뿐이다. 적을 내용이 많은 경우, 발신자는 문서 편집기에서 폰트를 줄이는 것처럼 글씨체를 작게 적는 정도였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엽서의 구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면은 그림이 뒷면은 글을 쓸 공간으로 구성된 탓이다..

마치 전보에 적힌 글이 발신자의 신체를 지시하지 않듯, 엽서에서의 그림은 요즘 디지털이미지를 인식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즉 그것을 그렸거나 혹은 촬영한 이를 떠올리기보다는 하나의 메시지로 인식한다. 장소를 나타내는 그림, 크리스마스와 같이 특정한 날을 기념하는 그림 등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을 지시한다.흥미로운 것은 엽서에 있는 그림이나 사진의 영역, 내용이 들어갈 텍스트의 영역이 엄격하게 지켜졌다는 점이다. 오직 그 영역을 정당하게 침범할 수 있었던 것은 (우체국) 직인뿐이다. 적을 내용이 많은 경우, 발신자는 문서 편집기에서 폰트를 줄이는 것처럼 글씨체를 작게 적는 정도였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엽서의 구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면은 그림이 뒷면은 글을 쓸 공간으로 구성된 탓이다..

'이미지와 텍스트' 노동으로써의 편지, 그림엽서 그리고 전보

'이미지와 텍스트' 노동으로써의 편지, 그림엽서 그리고 전보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편지 지금 내가 써내려가는 하얀 공책처럼 편지지에 손 글씨로 써내려간 글은 편지를 받는 이(수신자)를 위한, 수신자만을 위한 말의 흔적이다. 수신자는 편지에 적힌 글씨를 통해 글을 쓴 이(발신자)를 떠올린다. 선명하지는 않겠지만, 수신자는 마지막으로 봤던 발신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편지를 읽는다. 수신자는 발신자가 그의 손으로 쓴 글 표면의 굴곡을 따라 발신자를 만난다. 편지는 단지 말의 흔적이기 보다는 발신자의 신체이자 곧 그 자체를 엿볼 수 있는 매개이다. 전보(1830년대) 전보는 발신자가 적은 메시지를 전기신호로 변환 후 편지 혹은 엽서와 같은 형태로 변환된다. 발신자가 신체를 통해 작성한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발신자가 편지 방식으로 작성된 메시지는 전기신호로 변환되고 이를 다시 문자로 기록한..

편지 지금 내가 써내려가는 하얀 공책처럼 편지지에 손 글씨로 써내려간 글은 편지를 받는 이(수신자)를 위한, 수신자만을 위한 말의 흔적이다. 수신자는 편지에 적힌 글씨를 통해 글을 쓴 이(발신자)를 떠올린다. 선명하지는 않겠지만, 수신자는 마지막으로 봤던 발신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편지를 읽는다. 수신자는 발신자가 그의 손으로 쓴 글 표면의 굴곡을 따라 발신자를 만난다. 편지는 단지 말의 흔적이기 보다는 발신자의 신체이자 곧 그 자체를 엿볼 수 있는 매개이다. 전보(1830년대) 전보는 발신자가 적은 메시지를 전기신호로 변환 후 편지 혹은 엽서와 같은 형태로 변환된다. 발신자가 신체를 통해 작성한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발신자가 편지 방식으로 작성된 메시지는 전기신호로 변환되고 이를 다시 문자로 기록한..

'이미지와 텍스트' 머리말

'이미지와 텍스트' 머리말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카드’를 접두어로 사용하는 ‘카드뉴스’는 어떤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매체의 한 형식이다. ‘카드뉴스’는 결코 ‘카드’만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뉴스’와 같이 기존에 존재했던 장르, 즉 그것을 설명하는 서술어가 따라붙는다. 앞으로 우리는 19번에 걸쳐 학교 밖 사람들을 대상으로 ‘카드’ 형태를 빌려 ‘교육’을 고민할 것이다.먼저 살펴볼 것은 ‘카드’를 구성하고 있는 그림과 텍스트의 고유한 특성이다. 현실에 기반을 둔 그림과 텍스트가 합쳐지면 현실적일까? 반대로 가상에 기반을 둔 그림과 텍스트가 합쳐지면 비현실적일까? 조금은 난해하지만, 그림과 텍스트는 각각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살펴보면 둘이 합쳐진 형태의 ‘카드’에 대한 인식 고찰에 도움을 줄 것이다.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교육’이다. 여기서..

‘카드’를 접두어로 사용하는 ‘카드뉴스’는 어떤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매체의 한 형식이다. ‘카드뉴스’는 결코 ‘카드’만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뉴스’와 같이 기존에 존재했던 장르, 즉 그것을 설명하는 서술어가 따라붙는다. 앞으로 우리는 19번에 걸쳐 학교 밖 사람들을 대상으로 ‘카드’ 형태를 빌려 ‘교육’을 고민할 것이다.먼저 살펴볼 것은 ‘카드’를 구성하고 있는 그림과 텍스트의 고유한 특성이다. 현실에 기반을 둔 그림과 텍스트가 합쳐지면 현실적일까? 반대로 가상에 기반을 둔 그림과 텍스트가 합쳐지면 비현실적일까? 조금은 난해하지만, 그림과 텍스트는 각각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살펴보면 둘이 합쳐진 형태의 ‘카드’에 대한 인식 고찰에 도움을 줄 것이다.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교육’이다. 여기서..